펀드 손실나도 세금내는 나라
선진국 중엔 한국밖에 없어
[ 나수지 기자 ]
“자본시장법 시행 후 지난 10년은 자본시장이 양적으로 성장한 시기였습니다. 앞으로 10년이 질적 성장의 시기가 되려면 자본시장 관련 세제개편과 자본시장법 보완이 꼭 필요합니다.”
권용원 금융투자협회장(사진)은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경제규모 등 한국의 국제적 위상과 비교할 때 자본시장 관련 규제와 세제는 아직 뒤처진 수준”이라며 이같이 강조했다. 권 회장은 “선진국 가운데 한국처럼 펀드투자로 손실을 봤는데도 세금을 내야 하는 나라는 없다”며 “펀드 손익을 통산해 세금을 매기고 과거 손실을 이월해서 현재 손익에서 차감하는 손실이월공제를 허용해준다면 공모 펀드투자를 촉진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본시장 관련 규제가 세밀하고 절대적인 숫자도 많다는 게 금융투자업계의 문제의식이다. 권 회장은 “금융투자업 관련 규제를 파악해보니 자본시장법에 명시된 조문만 1407개에 달했다”며 “하위 항목과 행정지도 등 ‘그림자 규제’까지 포함하면 세부 규제 건수는 10배 이상 많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다른 업권과 비교해도 자본시장과 관련한 규제가 지나치게 많다는 얘기다.
권 회장은 증권거래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진 지금이 자본시장법을 개선할 적기라고 말했다. 그는 “자본시장법 시행 직후 글로벌 금융위기가 오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 후속 규제가 덧대기 식으로 생겨났다”며 “업권의 창의성을 중시해 세부사항에 대한 규제는 줄이는 대신, 원칙을 세워 이를 어기면 강하게 처벌하는 식의 원칙중심 규제로 전환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금융투자협회는 자본시장법 개선을 위해 먼저 400여 개에 달하는 영업 관련 조문을 들여다보고 있다. 권 회장은 “관련 태스크포스(TF)를 꾸려 1~2개월 안에 초안을 내놓을 예정”이라며 “불필요한 규정, 합치거나 뺄 수 있는 규정 등을 솎아내 자본시장법 개정 건의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금융투자협회는 오는 9월 정기국회 이전에 최종안을 마련해 금융당국과 국회 등에 건의할 계획이다.
자본시장 발전을 위한 금융투자업계의 과제로는 해외 진출 등을 통한 경쟁력 강화를 꼽았다. 권 회장은 “국내 투자자에게 좋은 상품을 공급하려면 해외 투자도 확대돼야 한다”며 “내부통제시스템을 보완해 과도한 규제 없이도 업계가 스스로 자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나수지 기자 suj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