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동 차단' 내걸고 사이트 접속기록 들여다보겠다고? 논란 키우는 정부

입력 2019-02-12 11:18
수정 2019-02-12 11:50
'HTTPS 검열'은 사용자 데이터 감청에 가까워
"어차피 뚫을 사람들은 뚫는다"… 실효성 논란



포르노 등 음란 사이트를 표적으로 종전보다 한층 강력한 수위의 불법 유해 웹사이트 차단기술이 적용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단순 ‘야동 사이트’ 접속 차단을 넘어 본질은 정부의 감청·검열 시도로 볼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12일 정보기술(IT) 업계에 따르면 지난 11일부터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등 당국 요청에 따라 불법 유해 사이트 전면 차단 정책이 시행됐다. 국내 인터넷서비스사업자 중 KT가 해당 접속 사이트 차단에 앞장섰고 다른 사업자도 곧 차단할 계획이다.

기존에 정부는 불법 유해 사이트의 인터넷 주소(URL)를 차단해왔다. 사용자가 불법 유해 사이트 주소를 입력해 접속을 시도하면 ‘Warning’ 경고창(사진)이 뜬다. 이같은 차단 방식은 URL 앞자리의 ‘http’ 대신 ‘https’를 쓰면 쉽게 뚫리는 맹점이 있었다. HTTP보다 보안이 강화된 통신 규약인 HTTPS의 경우 인터넷 공급자 등이 사용자의 패킷(주고받는 데이터 내용)을 열어볼 수 없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정부가 새로 적용한 강화된 불법 유해 사이트 차단 방식은 패킷을 열어볼 수 있게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HTTPS 인증과정에서 주고받는 ‘SNI(Server Name Indication)’라는 패킷을 열어 불법 유해 사이트 도메인 접속 유무를 파악한 뒤 이를 차단한다. SNI 패킷은 암호화 처리되지 않아 이같은 조처가 가능하다.

당국 요청에 따라, 인터넷 공급자가 사용자의 데이터 내용을 직접 확인해 차단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핵심.

엄밀히 따지면 이는 개인의 통신 내용을 엿듣는 ‘감청’ 행위로 해석될 수 있다. 통신비밀보호법(제2조7항)은 “당사자 동의 없이 통신 내용을 공독하여 지득 또는 채록하는” 행위가 감청에 해당한다고 명시했다. “모든 국민은 통신의 비밀을 침해받지 아니한다”는 헌법(제18조)에 비춰봐도 문제의 소지가 크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처럼 사생활 침해, 표현의 자유 등 기본권 위배 논란까지 나오는 반면 정작 차단 방식의 실효성에 대해선 의문이 제기된다. VPN(가상사설망) 소프트웨어를 이용하면 해외 IP를 경유해 손쉽게 음란 사이트에 접속할 수 있어서다.

따라서 일각에선 중국처럼 VPN 접속까지 원천 차단하는 방식을 도입하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정부 요청에 의해 HTTPS 차단으로 인터넷 검열을 하는 사례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로는 매우 이례적이라고 전문가들은 꼬집었다.

김산하 한경닷컴 기자 san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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