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지연 치료 앱 개발한 스타트업…삼성 만나 1년 만에 몸값 10배 뛰었다

입력 2019-02-11 17:26
'두브레인' 창업 최예진 대표

애니메이션·게임 접목해 자폐 진단 프로그램 등 개발
삼성 'C랩'서 1억원 지원받아, AI 전문가·콘텐츠 확대
가입자 18만명으로 급증…캄보디아 등 해외 진출도 가속


[ 오상헌 기자 ] 최예진 두브레인 대표(26·사진)가 지능이 떨어지는 5~7세 발달지연 아동에게 ‘꽂힌’ 건 대학(서울대 경영학과) 합격 통보를 받은 2011년 말이었다. 중학교 입학 후 6년 만에 갖게 된 ‘자유시간’을 헛되게 보내기 싫었던 그의 눈에 집(서울 봉천동) 근처 복지관을 드나들던 발달지연 아이들이 들어온 것.

최 대표는 이내 아이들에게 빠져들었다. 특수아동지도사협회가 발급하는 인지치료사 자격증을 딸 정도였다. 하지만 함께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고민은 깊어졌다. 시간당 5만~12만원에 달하는 비용 탓에 95%가 넘는 발달지연 아동이 치료를 못 받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최 대표는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아이에게 효과적인 치료를 해줄 수 있을까 고민하다 스마트폰 앱(응용프로그램)을 떠올렸다”며 “치료 프로그램에 애니메이션과 게임을 가미하면 아이들이 흥미를 갖고 꾸준히 치료를 받을 거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2016년 초 최 대표는 실행에 들어갔다. 중·고교 시절 주식 및 환율 투자로 번 1억원을 종잣돈으로 투입했다. 한국창의영재교육연구원 출신 전문가들과 상의해 앱의 기본 콘셉트를 짠 뒤 서울대에서 친분을 쌓은 엔지니어 선배들과 함께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전문 디자이너들을 채용해 자체 캐릭터도 만들었다.

이렇게 탄생한 ‘D-레이’(모바일 자폐·발달 진단 프로그램)와 ‘D-키트’(모바일 치료 솔루션)는 ‘연습 버전’인데도, 2017년 유엔이 주최한 ‘도시 혁신가 대회’에서 1등상을 받을 정도로 주목받았다. ‘봉사활동’이 ‘사업’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더 많은 아이를 치료하려면 프로그램을 대폭 업그레이드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선 돈이 필요했다. 최 대표는 “당시엔 모든 것이 부족했다”며 “더 많은 인력과 더 넓은 네트워크, 더 높은 기술이 필요했다”고 떠올렸다.

최 대표가 삼성의 문을 두드리게 된 배경이다. 지난해 8월 처음 외부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에 개방한 삼성전자 사내 벤처 육성 프로그램인 C랩 아웃사이드에 지원기업에 응모했다. 삼성은 ‘기업가 정신’을 고취하기 위해 2022년까지 200개 사내 프로젝트와 300개 외부 스타트업을 1년씩 지원키로 했다.

최 대표는 “C랩 기업으로 선정되자 많은 게 달라졌다”고 했다. 일단 지갑이 두둑해졌다. 삼성으로부터 1억원을 지원받은 데다 사무실(서울 우면동 삼성전자 연구개발센터) 임차료, 식비 등도 무상으로 제공됐다. 디자이너, 발달장애 치료 전문가, 인공지능(AI) 개발 인력 등을 추가 채용해 콘텐츠를 강화했다. 지난해 2월 정식으로 선보인 앱 가입자가 10개월여 만에 18만 명으로 불어난 비결이다.

최 대표가 꼽는 가장 큰 혜택은 ‘삼성이 인정한 스타트업’이란 후광효과였다. 이 덕분에 서울아산병원 등과 하는 임상연구는 물론 캄보디아 등 해외 진출에도 속도가 붙었다. 올 2분기에는 두브레인의 두뇌교육 프로그램을 탑재한 ‘삼성 두브레인 탭’도 내놓는다. 최 대표는 “C랩이 아니었다면 우리 같은 스타트업이 어떻게 삼성과 손잡을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몸값’도 함께 뛰었다. 2017년 말 네이버 계열 벤처캐피털(VC)인 스프링캠프로부터 일부 투자를 받을 때보다 기업가치가 1년여 만에 10배 이상 불었다. 최 대표는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 유럽 등해외 VC들로부터 투자 제안을 받고 있다”며 “C랩 출신답게 국내 대표 스타트업으로 성장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