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최첨단 3세대 原電이지만 완공 5년 넘게 방치…39년 분쟁 속 매몰비용만 11조원

입력 2019-02-10 17:32
대만 제4원전 룽먼발전소 가보니

1980년 원전 추가 건설 발표
1999년 첫삽…2014년 완공
차이잉원 정부 탈원전 정책에 폐로절차 밟다 국민투표로 제동
내년 총통선거 이후 가동 결정


[ 노경목 기자 ] 대만 타이베이에서 동쪽으로 자동차를 타고 한 시간가량 가면 원자력발전소가 나온다. 해안가에 자리잡은 룽먼발전소다. 대만의 네 번째 원자력발전소로 가장 앞선 기술인 3세대 원전이지만 완공 이후 5년 넘게 버려져 있다. 지난 8일 기자가 찾아간 발전소는 텅 비어 있었다. 비까지 내려 사무동, 발전용수 처리장 등 부대시설도 을씨년스러웠다. 탈원전을 둘러싼 갈등이 얼마나 많은 사회적 비용을 불러오는지 조용히 증언하고 있었다.

룽먼 원전 건설 계획이 처음 잡힌 것은 1980년이다. 당시 대만 정부는 미래 전력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추가 원전 건설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건설에 들어가기까지 19년이 걸렸다. 먼저 지역 주민이 강력하게 반대했다. 기존 원전보다 안전한 기술이 적용된다지만 여전히 위험하다는 우려가 컸다. 1986년 당시 소련에서 체르노빌 원전사고가 나며 반대 목소리는 커졌다. 1992년 룽먼 원전 건설을 위한 예산안이 올라가자 야당인 민진당은 당수가 단식까지 하며 격렬히 반대했다.

1999년 첫삽을 떴지만 2000년 집권한 민진당의 천수이볜 총통이 취임 다음달 룽먼 원전 건설을 중단시켰다. 국회 동의를 밟지 않는 등 절차상 미비로 다음해 건설이 재개됐지만 여전히 어려움을 겪었다. 환경단체들의 실력 저지로 원자로 반입이 지연됐으며, 현장에서 원주민 유적이 나오는 통에 발굴공사로 다시 건설이 멈추기도 했다. 당초 2005년 완공될 예정이던 룽먼 원전 공사는 2014년 가동 전 안전검사를 끝내며 사실상 완료됐다.

하지만 전력 생산은 이뤄지지 않았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다시 반대 여론이 높아진 데 따른 결과다. 대만 정부는 “가동 여부는 추후 국민 의견을 수렴해 결정하겠다”며 시설을 봉인했다. 전력 생산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룽먼 원전에는 매년 13억대만달러(약 475억원)의 유지비만 들어가고 있다.

완전한 탈원전을 공약한 차이잉원 총통이 2016년 집권하면서 룽먼 원전은 운명을 다하는 것처럼 보였다. 정부의 폐쇄 결정에 따라 지난해 3월 대만전력이 원전 내 연료봉을 3년 안에 모두 반출해 폐로 절차를 밟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국민투표로 2025년까지 원전을 모두 없애겠다는 차이잉원 총통의 방침은 백지화됐다. 다음달 대만전력은 룽먼 원전의 연료봉 반출을 다시 중단한다고 밝혔다. 내년으로 다가온 총통선거에서 원전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국민당이 압승할 가능성이 커져 이후 가동 결정이 내려질 가능성도 높다.

결국 39년간의 논란에도 룽먼 원전의 앞날은 불투명하다. 처음 건설 계획안이 나왔을 때 210억대만달러였던 건설 관련 정부예산은 공사가 지연되며 893억대만달러(약 3조2600억원)까지 불어났다. 룽먼 원전 소유주인 국영 대만전력의 지출 금액까지 합하면 매몰비용이 3000억대만달러(약 10조9400억원)에 이른다는 통계도 있다. 현장에서 만난 주민 천밍 씨는 “가동도 되지 않고 서 있는 원전 건물을 보면 그렇게 오랜 시간 많은 돈을 쏟아부은 것이 무슨 의미였나 싶다”고 말했다.

룽먼=노경목 특파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