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비밀대화 나누길래…카톡 안 깔고 텔레그램만 쓰는 폰 '2만대'

입력 2019-02-08 17:36
보안 강한 外産 메신저 '질주'

텔레그램 이용자 1년새 47%↑
암호화 수준 높은 시그널 96%↑
전문가 "삭제 메시지, 복원 불가"


[ 임현우/이수빈/배태웅 기자 ] 김경수 경남지사의 구속으로 이어진 ‘드루킹 사건’, 손석희 JTBC 사장을 둘러싼 ‘기자 폭행 의혹’, 안희정 전 충남지사와 조재범 전 쇼트트랙 국가대표 코치를 몰락시킨 ‘성폭력 사건’….

연이어 한국 사회를 들썩이게 한 스캔들에 공통적으로 등장한 ‘증거’가 있다. 보안에 강한 것으로 소문난 텔레그램, 시그널 등 외산(外産) 스마트폰 메신저다. 유명인사들의 내밀한 대화에 쓰인 사실이 세간에 알려지면서 국내 사용자가 가파르게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8일 시장조사업체 랭키닷컴에 따르면 텔레그램의 월간 이용자는 지난해 1월 117만9070명에서 올 1월 173만9668명으로 47.5% 늘었다. 시그널 이용자는 1만8158명에서 3만5594명으로 96% 급증했다. 같은 기간 카카오톡은 3700만 명 안팎으로 큰 차이가 없었고, 라인은 50만 명 가까이 줄어든 것과 대조를 보였다.

다른 메신저는 깔지 않고 오직 텔레그램만 쓰는 사람이 두 배 이상으로 불어난 점도 눈길을 끈다. 지난해 1월 1만253명에서 올 1월 2만3729명으로 뛰었다. 정보기술(IT)업계 관계자는 “카카오톡의 압도적 점유율을 고려하면 쉽게 보기 힘든 이용 행태”라며 “대부분 세컨드(보조용) 폰 등에 설치한 사례로 추정된다”고 했다.

이들 메신저는 각종 사건사고 뉴스에 오르내릴 때마다 쏠쏠한 ‘홍보 효과’를 누렸다. 랭키닷컴은 “텔레그램은 안 전 지사 사건이 터진 작년 3월, 시그널은 드루킹 보도에 언급된 작년 4월에 이용자가 특히 많이 늘었다”고 설명했다.

수사당국이 텔레그램 대화 내용을 증거로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지만, 삭제한 내용을 복구하는 수준은 아니다. 경찰의 한 디지털포렌식 담당자는 “현 기술로는 지워지지 않고 휴대폰에 남아 있는 대화를 수사에 활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복수의 보안업체 전문가도 “삭제된 메시지 복원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다만 텔레그램의 화면 캡처 차단 기능이 일부 운영체제에선 작동하지 않는 등 허점도 있어 ‘100% 비밀 보장’을 기대해선 안 된다는 지적도 있다.

러시아 개발자들이 만들어 독일에 본사를 두고 운영되는 텔레그램은 2014년 카카오톡 감청 논란으로 유명해진 뒤 서울 여의도 금융가와 세종시 관가까지 깊숙이 퍼졌다. 미국 IT업체 오픈위스퍼시스템즈가 개발한 시그널은 텔레그램보다 암호화 수준이 더 높다는 평가 덕에 주목받고 있다. 안철수 대표 시절 국민의당에서 쓴다고 해 유명해진 바이버는 일본 라쿠텐 계열의 보안 메신저로, 국내 이용자 월 8만~10만 명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임현우/이수빈/배태웅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