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예방 둘다 잡은 혈우병 치료제, 국내 상륙

입력 2019-02-08 17:34
전예진 기자의 토요약국

이중항체 치료제 '헴리브라'
주 1회 자가투여로 예방효과


[ 전예진 기자 ] 지난달 이중항체 기술을 적용한 신약이 국내 허가를 받았습니다. 스위스 로슈와 일본 쥬가이제약이 개발한 혈우병 치료제 ‘헴리브라’(사진)입니다. 이중항체는 차세대 신약 개발 기술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중항체는 서로 다른 두 개의 항원에 결합할 수 있는 단백질을 말합니다. 단일 항체 의약품보다 적은 용량을 써도 높은 효능을 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죠. 또 질병을 일으키는 원인에 직접 작용해 악성 종양이나 희귀병과 같은 난치질환 치료제 개발도 가능합니다. 다만 두 가지 항원과 모두 반응하도록 설계해야 하기 때문에 고난도 기술이 필요합니다. 국내에서 파멥신, ABL바이오, 레고켐바이오 등 바이오 기업들이 자체 이중항체 플랫폼을 활용해 신약을 개발하고 있는데요. 아직 초기 단계인 데다 개발이 어려워 갈 길이 멀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지금까지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허가를 받은 이중항체 약물은 3개인데요. 프레제니우스의 악성 복수 치료제 ‘리무밥’과 암젠의 백혈병 치료제 ‘블린사이토’, 이번에 국내 허가를 받은 ‘헴리브라’입니다. 이들 모두 난치, 희귀병 치료제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헴리브라는 항체 보유 A형 혈우병을 치료할 뿐만 아니라 예방하는 혁신 신약입니다.

혈우병은 유전자 돌연변이로 피를 굳게 하는 응고인자가 부족해서 생기는 질환입니다. 혈액응고 제8인자가 부족한 A형과 제9인자가 부족한 B형으로 나뉩니다. 이런 환자들은 그동안 부족한 응고인자를 주 2~3회 정맥주사로 투여받아야 했습니다. 혈액 속에 응고인자를 직접 넣어주는 것이죠. 이런 방식은 출혈이 발생했을 때 효과가 있지만 계속 사용하면 내성이 생긴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제약사들은 문제의 제8인자와 제9인자를 활성화하는 약물 개발에 초점을 맞춰왔습니다. 헴리브라는 다른 방식을 택했습니다. 환자에게 부족한 제8인자를 대신해 활성형 제9인자와 제10인자가 결합해 혈액 응고를 원활하게 하는 새로운 연결 고리를 찾아낸 겁니다. 여기에 이중특이항체 기술이 적용됐는데요. 제9인자와 제10인자 두 가지 인자에 동시에 달라붙게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헴리브라는 제8인자의 억제인자를 보유한 환자에게도 효과를 보인다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억제인자가 없는 일반 A형 혈우병 환자들은 예방요법으로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출혈이 발생하면 병원에서 정맥주사를 맞아야 했던 번거로움을 덜 수 있게 됐습니다. 피하주사 형태라는 것도 장점입니다. 주 1회 피하주사를 맞으면 예방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국내 A형 혈우병 환자는 약 1600명, 시장 규모는 약 1500억원으로 환자 한 명당 연간 1억원가량의 의료비가 드는데요. 헴리브라가 혈우병 치료제 시장의 판도를 바꿀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ac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