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춘호의 글로벌 Edge] 독일식 경제모델에 울리는 弔鐘

입력 2019-02-07 18:03
오춘호 선임기자·공학박사


[ 오춘호 기자 ]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지난 4일 1박2일 일정으로 일본을 찾았다. 집권 13년 동안 다섯 번째 방문이다. 조 케저 지멘스 회장과 페터 켐프 독일 산업연맹(BDI) 회장을 동반한 경제 외교였다. 일본 언론은 메르켈 총리가 일본만 찾았다며 양국의 밀월을 뽐냈지만 정작 메르켈은 게이오대 강연에서 “일본이 원전 폐기에 관해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는다”고 불만스러워했다. 마치 풍력 등 재생에너지 기술이나 관련 제품을 구매하지 않는다는 비판으로 들린다.

독일 내에선 페터 알트마이어 경제장관이 5일 베를린에서 ‘2030 국가산업전략’을 발표했다. 국내 기업이 해외에 매각돼 핵심 기술이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국가가 일시적으로 기업 주식을 취득할 수 있다는 내용이 이 전략의 핵심이다.

제조강국에 초점 맞췄던 독일

메르켈은 밖으로 뛰고 알트마이어는 산업 보호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초강수를 두고 있다. 그만큼 독일 경제 위기가 심각한 모양이다.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1.5%에 불과하다. 5년 만에 가장 낮은 수치다. 유로존 국가 평균치(1.8%)보다 못하다. 올해 전망도 1.0%밖에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수출 의존형 국가에서 수입이 수출을 앞질렀다. 단기적으로는 중국의 불황과 미·중 경제분쟁 탓이다. 주력 품목인 자동차의 대(對)중국 수출에서 20%가 감소했다. 세계적인 자동차 시장 포화 현상으로 독일 경제의 앞날이 그리 밝지 않다. 제조 설비투자도 떨어지고 비즈니스의 신뢰지수도 하락세다.

금융마저 힘들다. 독일의 최대은행 도이체방크가 3년 연속 적자의 늪에서 지난해 헤어나오긴 했지만 순전히 직원들의 대폭 인원 감축에 따른 결과다. 도이체방크는 지난해 5월 9만7000여 명의 직원 중 1만 명을 감원했다.

미래의 성장동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디지털 기술에선 미국의 GAFA(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애플)나 중국의 BATIS(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 아이프라이테크 센스타임)와 같은 기업이 없다. 인공지능(AI)이나 자율주행 기술도 빈약하다. 수년 전만 해도 각종 전망치가 아주 좋았다. 임금이 올라 높은 인플레이션을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하지만 지금 독일은 유럽연합(EU)의 가장 큰 근심거리로 대두됐다. 독일이 저성장 늪에 빠져버리면 유럽 전체가 저성장에 처할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脫원전에 매달리는 메르켈

독일이 힘을 잃으면서 EU 내에서 위상도 떨어지고 있다. 독일 지멘스와 프랑스 알스톰의 철도사업 합병 시도가 EU 반(反)독점당국의 벽에 막혔다. 양국 정부가 전폭 지지했지만 독점 우려가 해소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승인을 거부했다.

장기적으로는 장인정신으로 상징되는 독일식의 경제모델이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는 사실을 내포하고 있다. 노동력은 갈수록 노쇠화하고 있다. 평생학습과 재교육은 독일에서 거의 찾기 힘들다. 기업들은 디지털화에 충분히 투자하지 않는다. 정치에 휘말려 미래성장 엔진을 전혀 찾지 못한다는 게 독일의 가장 큰 위기다.

노동개혁과 시장개혁도 아무도 얘기하지 않는다. 지난해 독일 철강노조는 일자리 나누기 명목으로 주 35시간을 28시간으로 단축하기까지 했다. 이런데도 메르켈과 알트마이어는 거꾸로 간다. 세계에서 전기비용이 가장 높은 국가지만 일본에까지 가서 탈원전을 홍보한다. 독일 내 보호주의정책을 얘기하고 외국 투자를 겁낸다. 수출 의존 국가 독일이다. 같은 수출 의존국 한국도 비슷한 경로로 가고 있다. 정말 걱정이다.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