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우리 몸은 싸우고 있다
[ 유재혁 기자 ]
필살기를 갖춘 특급 킬러인 호중구는 ‘우리 몸속 면역계의 제임스 딘’이다. 선글라스를 낀, 멋지고 화끈한 사나이로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젊어서 죽는다. 사람의 몸속에서 매일 2억 개가 골수에서 혈류로 콸콸 쏟아져 나오는 호중구는 길이가 겨우 12미크론이고, 수명도 고작 몇 시간에 불과한 단세포지만 인간의 생명을 좌지우지하는 ‘작은 거인’이다. 그는 거미줄 같은 DNA망으로 흑사병균을 일망타진하고, 효소를 내뿜어 탄저균을 녹여버린다. 미생물을 대량 살상하기 위해 가미카제식 최후를 마친다. 호중구는 인체와 세균, 바이러스, 기생충 군단 간 전쟁에서 맹활약하는 정예 병사다.
《오늘도 우리 몸은 싸우고 있다》는 인간 체내를 여행하며 방대한 면역체계 전반을 알기 쉽게 설명하는 과학서다. 면역계가 감기 바이러스에서부터 전염병 세균에 이르기까지 병원체들을 어떻게 알아채고 해치우는지를 알려준다. 질병은 어떻게 면역계를 속이고 약점을 파고드는지도 보여준다. 은유와 묘사, 내러티브를 자유롭게 구사해 면역계의 내부 세계를 흥미롭게 소개한다.
저자는 면역계의 중추인 호중구와 같은 선천성 킬러 세포, B세포와 T세포 등 후천성 킬러세포들을 핵심 경호부대로 지칭하고 그 특징을 살펴본다. 선천성 면역계는 불특정 다수의 일반적인 침입자들을 막지만, 후천성 면역계는 특정 감염병들을 종식시키는 주문형 암살을 담당한다.
최외곽 방어선이라 할 수 있는 피부와 눈물, 콧물, 귀지 등이 방어군 역할을 하는 법도 제시한다. 또한 남성과 여성에게 각각 유리한 면역질환, 임신과 면역체계의 지원 활동 등 성(性)과 면역계의 밀접한 관계도 살펴본다.
그러나 면역계가 아군과 적군을 구분하지 못할 때 발생하는 ‘자가 면역 질환’의 위험성도 경고한다. 면역계가 췌장을 공격해 못 쓰게 만들 때 1형 당뇨병이 발생하는 게 일례다. 자가 면역 질환의 반대편에 있는 면역 결핍증에 걸리면 경미한 감염조차 물리칠 수 없어 무균시험관에서 살아야만 한다. (캐서린 카버 지음, 양병찬 옮김, 현암사, 408쪽, 1만8000원)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