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알못 | 심석희 메모 결정적 증거? 성폭행 혐의 조재범 범죄 입증 관건은

입력 2019-02-07 13:45
수정 2019-02-07 13:58
경찰, '성폭행 혐의' 조재범 전 코치 검찰 송치
성폭행 혐의 조재범, 메모·메신저에 덜미




조재범 전 쇼트트랙 국가대표 코치가 심석희 선수를 상대로 성폭행을 저지른 혐의가 경찰 수사에서 인정돼 7일 검찰에 송치된다.

경기남부경찰청 여성범죄 특별수사팀은 조씨를 미성년자 성폭행과 성추행, 협박, 강요 등의 혐의로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한다고 6일 밝혔다. 경찰은 작년 12월 심 선수가 조씨로부터 수차례 성폭행과 강제추행을 당했다며 추가 고소한 사건을 수사해왔다.

경찰은 고소장을 접수한 지 보름 만에 조 전 코치가 살았던 집과 차, 그리고 당시 구속 상태로 머물던 구치소를 대상으로 압수수색했다.

이때 조 전 코치의 휴대전화와 태블릿 PC를 확보했다.

이를 디지털 감식한 결과 심 선수와 나눈 성폭행 관련 대화가 드러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에 따르면 조씨는 심 선수가 고등학교 2학년이던 2014년 8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태릉·진천 선수촌과 한국체육대 빙상장 등 7곳에서 심 선수를 수차례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범행 장소는 일부 중복된 곳이 있으며, 전지훈련장 숙소나 외부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조씨는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으나 경찰은 심 선수가 작성한 메모 등에서 혐의를 입증할 근거와 일관된 진술 등을 결정적인 증거라고 판단했다.

조씨는 2번에 걸친 구치소 방문 조사에서 혐의 내용을 전면 부인했다. 그러나 경찰은 심 선수가 제출한 고소장의 내용, 4번의 피해자 조사에서 진술이 신빙성이 높다는 결론을 내렸다. 경찰에 따르면 심 선수는 3년 넘도록 장기간에 걸친 조씨의 범행에 대해 구체적이고 일관되게 일시와 장소를 특정해 진술했다.

심 선수가 제출한 메모에는 "오늘은 기분이 매우 좋지 않았다"처럼 심 선수가 피해를 당했을 때의 심정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조씨의 범행 일시와 장소는 물론 피해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구체적인 정황도 담겼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심 선수가 보낸 문자 중 성폭행 관련 내용을 암시하는 내용이 여러 번 등장한다"며 "조씨와 심 선수가 일방적인 지시·복종 관계였기 때문에 심 선수가 항의 등 구체적 표현을 쓰지 못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경찰은 또 심 선수의 동료 선수와 지인 등 9명을 대상으로 한 참고인 조사에서도 조씨의 혐의를 뒷받침할 만한 증언을 확보했다. 다만 이들 가운데 조씨로부터 성폭행당했다고 밝힌 추가 피해자는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조씨는 이와 별개로 국가대표 코치 시절 심 선수 등 4명을 상습 폭행한 혐의로 기소돼 2심에서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피해자 진술만이 증거인 경우 오락가락 번복할 경우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지난 1일 안희정 전 충남지사를 법정구속한 법원은 여중생을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60대 남성에게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무죄를 선고했다.

서울고법 형사 12부(부장판사 홍동기)는 아동청소년성보호법 위반 혐의(강간 등 치상)로 구속기소 된 이모(60)씨에 대한 검사의 항소를 기각하고 원심과 같이 무죄를 선고했다고 밝혔다.

재판의 쟁점은 안 전 지사 사건과 마찬가지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 여부였다. 법원은 안 전 지사 사건과 달리 이번 사건은 피해자의 진술이 번복되는 등 신빙성이 없다고 봤다.

사건 피고인 이씨는 경기도 한 아파트 동대표로 입주민 A양(당시 15세)에게 접근해 환심을 산 후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씨는 A양이 경제적으로 어렵고 아버지가 밤늦게 퇴근한다는 것을 알고, 밥을 사주겠다며 환심을 사고 A양을 병원·학교에 수차례 데려다주며 친분을 쌓은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에 따르면 이씨는 2016년 A양을 자신의 차량에 태워 꽃축제 행사장에 들렀다가 한 공원의 공터로 데려가 위력을 행사해 성폭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씨는 A양과 식사를 하고 축제 행사장에 들렀다 온 건 맞지만 성폭행한 사실은 없다는 입장이다.

이번 사건은 직접적인 증거가 없어 재판부가 피해자의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하는 게 핵심이었다.

1심은 A양의 진술이 일관적이지 않아 믿기 어렵고, 아파트 임시 동대표라는 직위가 A양의 자유를 제압할 만큼의 권력이라고 보기 어렵다면서 무죄를 선고했다. 또 성폭력을 당한 뒤에도 이씨를 만나 식사를 하고 옷 선물을 받은 점도 이례적이라고 봤다.

검찰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40세 이상 차이나는 이씨가 지속적으로 성관계를 요구하며 위협했기에 A양이 겁을 먹어 성관계가 이뤄진 것"이라는 것.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이씨가 A양을 성폭행한 게 아닌가 하는 상당한 의심이 든다"는 의견을 밝히면서도 "이씨가 A양을 성폭행했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면서 무죄 선고 이유를 전했다.

재판부는 "전문심리위원과의 면담 과정에서 A양은 피해 횟수에 대한 진술을 번복했고, 수사기관과 1심에서 말하지 않은 내용을 추가로 진술하기도 했다"며 "피해자의 진술이 주요 부분에서 계속 번복되거나 모순되는 이상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또 "형사재판에서 유죄의 인정은 법관이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확신을 가지게 하는 증거에 의해야 한다"며 "그런 증거가 없다면 피고인에게 설령 유죄의 의심이 간다고 해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검찰이 상고하지 않아 이씨는 무죄가 확정됐다. 이씨는 1심에서 구속된 기간에 대한 형사보상금을 국가에 청구했다.

이같은 사례들로 볼 때 성범죄의 혐의를 입증하는데는 피해자의 진술이 결정적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법알못(법을 알지 못하다) 자문단 조기현 변호사는 "무죄추정원칙에 위배된다는 비판이 있지만, 현재 성폭력범죄의 경우 피해자의 일관된 진술로 피고인에게 유죄판결이 나오는 경우가 있다"라고 밝혔다.

조 변호사는 "다만, 실제 재판은 피해자의 일관된 진술외에도 피해자가 피고인을 무고할만한 동기 등이 없는지도 살피게 되므로 '다른 어떠한 사정없이 피해자의 일관된 진술만으로도 유죄판결이 나온다'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어쨌든 성범죄의 혐의를 받고 있는 피의자(피고인)는 현실적으로는 다른 범죄에 비해 굉장히 불리한 입장에서 수사와 재판을 받는다고 볼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도움말=조기현 중앙헌법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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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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