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필 정치부 기자) 최근 제 3정당인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양당 호남 출신 의원들이 지난달 30일 비공개로 만나 저녁식사를 함께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입니다.
같은 야당이고 원내 1·2당에 밀려 지지율에 고전하고 있다는 점에서 같은 처지지만 성향은 완전히 다르다는 지적을 받고 있습니다. 바른미래당은 여당에 각을 세우며 자유한국당과 정책공조를 같이 한 적이 많은 반면, 민주평화당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정책, 특히 대북 평화정책에서 우군으로 자리매김 해 왔기 때문입니다. 즉, 두 정당의 의원들은 국회 상임위원회 활동이 아니면 딱히 만날 일이 없는 사이인 것입니다.
양당의 중진인 김동철 박주선 바른미래당 의원과 평화당 장병완 원내대표 권노갑·정대철 상임고문은 이날 서울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회동을 갖고 “오만과 독선에 빠진 더불어민주당과 무능한 자유한국당을 뛰어넘는 수권 대안 야당을 만들어야 한다”는데 공감대를 같이 했다고 알려졌습니다. 장 원내대표는 이르면 설 연휴 직후 국회 토론회를 열어 양 측 통합 논의를 공론화하겠다는 계획입니다. 이 사안은 주요 통신사와 호남지역 언론을 통해 급속도로 퍼졌습니다.
통합의 핵심은 ‘호남 기반 정당’ 만들기 입니다. 양당에 포진한 광주 전북 전남 의원들을 규합하자는 것인데, 바른미래당이 합당하기 전 국민의당 상태로 돌아가면서 좀 더 호남 색채를 뚜렷하게 가져가자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현재 바른미래당에는 6명의 호남 의원들이 있습니다. 호남이 고향인 비례대표 의원들의 수를 합하면 10명이 넘습니다. 민주평화당은 14명 의원 전원이 호남 지역구입니다. 평화당 입장에서는 바른미래당 내 6명의 호남 의원들만 합쳐도 대번에 20석이 기준인 ‘교섭단체 정당’ 지위를 얻을 수 있습니다. 정치권 관계자는 “한자릿수 지지율인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의 간판으로는 차기 총선을 준비하기 어렵기 때문”이라며 “전형적인 선거를 앞둔 현역 의원들의 생존본능”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통합 논의는 사실상 바른미래당 중 보수파에 해당하는 바른정당 출신 8명의 의원들을 배제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민주평화당과의 합당을 이들 바른정당계 의원들이 찬성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가 급히 진화에 나섰습니다. 그는 양측 의원 회동 다음날 아침회의에서 “또다른 당내 갈등의 씨앗이 될 수 있다”며 “창당된 지 1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자강하는 노력이 우선”이라고 선을 그엇습니다.
한국 정당사에서 ‘지역’ 연고를 기반으로 한 정당의 출연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2008년 1월에 이회창 전 총재 주도로 창당했던 자유선진당은 대전 충청을 지지기반으로 했습니다. 이보다 앞선 1995년에는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주도로 자유민주연합이 충청권 정당으로 태동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민주당 계열 정당과 자유한국당 계열 정당도 각각 호남과 영남을 기반으로 했지만 전국정당을 표방하며 수도권 각축적을 적극적으로 벌였던 것과 비교하면 ‘소(小) 지역주의’에 기반한 정당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바른미래당 의원들은 설 연휴 직후인 오는 8일 1박 일정으로 워크샵을 떠납니다. 바른정당계의 좌장 격인 유승민 대표가 아직 공식석상의 전면에 나서고 있지 않은 와중에 자유한국당의 전당대회 시즌까지 겹쳐 미묘한 시점에서 모처럼 머리를 맞대는 자리입니다. 민감한 시기에 대두된 ‘호남당’ 논란이 어떻게 정리될지 주목됩니다. (끝) / j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