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정 현안, 사회적 합의보다 정치적 결단으로 풀어야

입력 2019-01-31 17:49
광주광역시가 ‘지역 노사민정협의회’를 구성해 4년 넘게 논의해온 이른바 ‘광주형 일자리’ 모델이 일단락됐다. 어제 광주시와 현대자동차의 투자협약식에는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정계 인사, 현지 사회단체 대표들까지 폭넓게 참석해 지역의 뜨거운 관심사임을 거듭 보여줬다.

다양한 형태의 양극화 속에 지역 경제가 어려운 곳이 많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광주시가 그런 한계를 돌파해보려는 노력은 주목할 만하지만, 선뜻 박수를 보낼 수 없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도 시장이 더 잘할 수 있는 분야에 세금 투입을 통한 공장 건설을 택했다는 점이다. 이런 방식의 모델이 자립·지속 가능할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지방자치단체마다 이런 모델을 만들겠다고 경쟁적으로 나서는 경우도 상정하지 않을 수 없다. ‘구미형’ ‘창원형’ ‘군산형’ 모델을 만들겠다며 멀쩡한 기업을 끌어들이고 기존 일감을 나눠 갖자는 목소리를 키워 나갈 때 우리 사회가 감당해 낼 수 있을까. 벌써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상반기 내 2~3개 지자체에 이 모델을 적용하겠다”고 나섰다. 가뜩이나 큰 정부, 비대해지는 공공 부문의 비효율에 대한 걱정이 커져 가고 있다. 공공 부문의 시장 잠식은 최근 정부가 내세워 온 ‘경제 활력’과 반대의 길이다. 이보다는 전체 시장을 향한 규제 완화, 감세, 금융 활성화 등 ‘일반 원칙’을 확립·시행하는 게 맞다. 한국적 노사관계, 지역 사회의 경영 개입 가능성 등을 감안할 때 ‘기준 연봉 3500만원, 단체협상 한시 유보’ 같은 출범 조건이 제대로 지켜질지도 의문이다.

‘광주형 일자리’ 논의 과정에서 보게 되는 근본 문제는 ‘사회적 협의’ ‘사회적 대화’라는 해결 방식의 무(無)책임성과 비효율이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을 한사코 껴안고 가려다 수개월간 중요한 노동 현안에 손을 못 댄 것도 마찬가지다. 기득권 세력이 된 노조와 무조건 대화·협상하겠다는 의미에서의 사회적 협의라면 버리는 게 맞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치적 결단’이다. 정부나 국회가 매사 노조나 일부 사회단체의 동의를 구하겠다는 식은 곤란하다. 적법 절차에 따른 합리적 행정은 정부의 고유한 권리이며 책무다. 대통령과 국회의 여야 대표가 합의한 ‘탄력근로제 확대 적용’에 반대하는 노동단체를 향해 언제까지 ‘동참과 대화’ ‘타협과 절충’을 호소할 것인가. 정부는 정부대로, 국회는 국회대로 행정부·입법부 본연의 입장에서 쌓인 현안을 신속 정확하게 처리해 나가도 국제 경쟁에서는 내일을 장담하기 어렵다. 사회적 합의가 아니라 정치적 합의라야 좀 더 성숙한 대의 민주주의에 다가갈 것이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의 경사노위 복귀 방침은 그런 점에서 바람직하다. 법 테두리 안에서 합리적 목소리를 내야 한다. 부실 산업 구조조정의 좋은 계기가 될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에서도 노조, 사회단체가 개입하는 ‘사회적 합의론’이 대두될까 걱정된다. 기업 구조조정부터 국책사업까지 예외 없이 끼어드는 ‘떼법’ ‘국민정서법’이라는 적폐문화도 사회적 합의론을 숙주 삼아 커온 것이기 때문이다.

고용·노동 문제나 대기업 정책 같은 경제 현안만이 아니다. 교육현장도 마찬가지다. 사회적 합의 방식에서 벗어나 정치적 결단을 내리려면 정부가 용기를 내야 하고 책임감도 더 가져야 한다. 장기 안목과 일관성도 중요하다. 은행에 효율과 혁신을 요구하면서 신입 직원은 더 뽑으라는 식의 모순된 정책을 일소해야 한다. ‘광주형 일자리’도 확대에 앞서 장기적으로 유지될 수 있을지, 나랏돈 퍼붓기는 더 없을지 면밀히 살펴야 한다. 지난 20년간 모든 정권이 ‘사회적 대타협’을 외쳤지만 어떤 성과를 냈는지 냉철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