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 김희경 기자 ]
‘원캐스트’의 힘은 막강했다. 공연 기간에 모든 배역을 한 명의 배우가 연기하는 원캐스트 방식은 배우들의 호흡을 긴밀하고 단단하게 연결했다. 그리고 이 에너지는 비극의 절정 ‘오이디푸스’ 신화를 완벽하게 재연하는 원동력이 됐다.
1월 29일부터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선보이고 있는 연극 ‘오이디푸스’ 얘기다. 이 작품은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결혼하게 된다’는 끔찍한 신탁을 받은 비극적 운명의 오이디푸스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연출은 서재형 감독, 오이디푸스 역은 황정민, 아내이자 엄마인 이오카스테 역은 배해선이 맡았다.
공연은 고대 그리스 3대 비극 작가였던 소포클레스의 원작에 충실하게 흘러갔다. 이 때문에 식상할 수 있지만, 작품 흡입력은 매우 뛰어난 편이었다. 그 힘은 원캐스트에서 나오는 듯했다. 최근 연극, 뮤지컬 작품은 더블 또는 스리 캐스트로 진행하는 게 대부분이다. 한 역할을 2~3명의 배우가 맡아 날짜별로 나눠서 연기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가장 호흡이 잘 맞고 실력이 뛰어난 배우들끼리 뭉쳐진 최상의 조합을 만날 수 있는 날은 많지 않다.
하지만 이 작품은 여기서 벗어나 바위처럼 뭉쳐진 단단한 연기력으로 슬픔과 고통을 뿜어냈다. 특히 운명의 굴레에서 절망하는 황정민의 연기는 관객들을 압도했다. 익숙한 소재지만 그 감정을 풍부하게 전달한 덕분에 객석 곳곳에서 울음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배해선의 캐스팅도 탁월했다. 그는 신비로운 존재인 동시에 슬픔에 가득 찬 이오카스테 역할을 차분하면서도 매력적인 목소리와 몸짓으로 표현해냈다.
신화 속 배경을 그대로 재연한 듯한 감각적인 무대 구성도 돋보였다. 신전을 연상하게 하는 기둥과 디자인, 몽환적인 영상을 보여주는 스크린 활용이 뛰어났다. 마차에 타고 이동하던 아버지 라이오스왕을 살해하는 장면도 회전식 턴테이블 무대를 통해 효과적으로 그려냈다.
정교한 연출도 돋보였다. 특히 ‘늙지 않는 여자’로서 검은 머리였던 이오카스테가 사망하기 직전 백발로 변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무대 뒤쪽으로 뛰어갈 땐 검은 머리였다가, 작은 철문을 열고 나올 땐 백발이 되면서 죽음이 가까워졌음을 암시했다. 공연은 오는 24일까지.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