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맥] 超자동화로 생산성 올려야 4만달러 가능하다

입력 2019-01-29 18:21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를 향한 과제

일본은 27년째 4만달러 달성 못해…독일도 11년 걸려
日기업들 생산성 확보 위해 유턴, 50년만에 돌아오기도
2만달러 패러다임에 갇힌 한국…기업유인책도 전무

오춘호 선임기자·공학박사




[ 오춘호 기자 ] 한국은행은 지난해 한국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3만1000달러를 웃돈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2006년 2만달러를 넘긴 지 12년 만이다. 본격 선진국에 진입한 셈이다. 인구 5000만 명 이상이면서 소득 3만달러 이상인 ‘30-50클럽’에 들었다고도 한다. 하지만 다음 목표인 4만달러로 가기에는 너무나 높은 장벽들이 산적해 있다. 아예 넘지 못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도 있고 완전히 새로운 판을 짜야 된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미국은 계속 소득을 증가시키고 있다. 일본 또한 5만달러 고지로 가기 위해 안간힘이다. 지금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할까.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28일 일본 의회에서 한 시정연설에서 GDP 600조엔(약 6152조원) 달성을 다시금 꺼내들었다. 아베는 2013년 아베노믹스를 제창할 때부터 2020년까지 GDP를 600조엔으로 끌어올리겠다고 줄곧 밝혀왔다. 하지만 이번 연설에서 그 시점은 못박지 않았다. GDP 600조엔이면 1인당 소득은 현재 인구 기준 5만달러 수준이다. 일본은 1992년 3만달러를 넘어선 뒤 엔고 여파로 잠시 4만달러를 넘기도 했지만 이후 27년째 4만달러를 넘지 못하고 있다. 일본은 국민소득이 2만달러에서 3만달러로 올라가는 데 불과 4년이 걸렸다. 제대로 4만달러를 넘기 위해선 연 2~3% 정도씩 줄곧 성장해야 하지만 일본은 현재 2% 수준에 머물고 있다. 스페인이나 이탈리아도 4만달러 진입에 실패했다.

4만달러의 허들은 독일에도 적용된다. 독일이 3만달러에 진입한 시기는 미국과 같은 1996년이었다. 하지만 독일은 노동 문제 등으로 고생하면서 2007년에야 4만달러에 이르렀다. 미국이 8년 걸린 데 비해 3년 늦었다. 3만달러에서 4만달러로 올라가는 데 소요되는 기간은 평균 4.32년이다. 물론 이들 국가는 자원이 있거나 소규모 도시국가들이 대부분이다.


스페인·이탈리아도 4만弗 실패

이토 모토시게 전 도쿄대 교수는 일본 경제주간지 다이아몬드에 기고한 글에서 일본이 4만달러의 벽을 돌파하지 못하는 이유는 생산성이 뒷받침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단언한다. 3만달러 시대에는 가격 경쟁력이나 원가 절감을 통해 성장을 이뤘지만 4만달러는 힘들다는 견해다.

그는 “일본은 한국과 대만과 경쟁하면 영원히 소득 성장을 하지 못하고 6만달러 클럽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소득이 낮은 국가와 경쟁하면 가격 경쟁만 하게 된다는 생각이다. 그는 생산성을 끌어올리고 3만달러의 함정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경제 사회 구조를 본질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고 밝혔다. 가격 경쟁력으로 승부를 거는 것은 20세기 모델이고 2만달러 국가들의 모델이다. 더 이상 가격 경쟁이 아니라 생산성 경쟁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미국과 일본에서 활발하게 일고 있는 리쇼어링(해외 진출 기업의 국내 회귀)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된다. 미국 기업들은 그동안 인건비 절감을 위해 해외로 나갔으나 이제 생산성이 담보되는 미국으로 돌아온다는 게 리쇼어링의 핵심이다.

이들 리쇼어링 기업은 2017년 기준 2010년의 두 배로 늘었다. 중국과 멕시코에서 가장 많이 돌아오고 있다. 이미 인건비는 각국의 격차가 나지 않는 상황인데다 자동화와 로봇화 등으로 인건비가 크게 중요하지 않은 환경이 되고 있다. 특히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에까지 공장을 지었던 미국의 섬유기업들은 미국 내에 공장을 지어 ‘메이드인 USA’를 만들고 있다. 이들은 미국에 산업집적 단지인 소싱 클러스터를 세우고 기업 협력과 정보 교류 등을 하고 있다.

'메이드인 USA' 늘리는 미국

일본 기업들도 잇달아 국내로 유턴하고 있다. 생활용품 제조기업인 라이온은 52년 만에 가가와시에 치과 관련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시티즌시계도 50년 만에 시계공장을 세우고 오노약품도 내년 40년 만에 야마구치시에 신공장을 건설할 예정이다. 2015년 이후 일본 내에 제조공장을 지을 계획인 기업이 300개가 넘는다고 한다. 물론 이들이 본국으로 돌아오는 이유는 명확하다. 생산성을 올리기 위해서다. 제품 품질을 유지하면서 생산을 지속하기 위해선 그만한 인재와 노하우가 필요하다. 이들을 본국에서 얻기 쉽다는 것이다.

일관생산·IoT 혁신으로 효율화

4차 산업혁명의 바람도 한몫 한다. 공장 내 모든 작업을 자동화해 초(秒)단위 스피드로 생산하는 초(超)자동화 도입 기업도 늘고 있다. 가이젠(개선)의 국가 일본에선 ‘IoT(사물인터넷) 가이젠’을 외치며 자동화 속에서 개선을 꾀한다. 완전 공장자동화를 이룬 항공기 부품기업 IHI는 2년간 가이젠을 한 덕에 생산 효율이 2배 올랐다고 한다.

아웃소싱을 하지 않고 원재료에서 완성 제품을 만들기까지 모든 공정을 일관 생산하는 작업도 한창이다. 4차 산업혁명 덕이다. 모든 부서가 한 곳에 집중해 생산성 향상과 효율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독일이 범정부 차원에서 집중 투자하는 인더스트리 4.0도 알고 보면 외국에 나가 있는 독일 기업들을 불러들이려는 리쇼어링 전략의 하나다.

한국은 이런 분위기와 거꾸로 가고 있다. 국내 제조 기업 중 해외 사업장을 보유한 기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96%의 기업이 유턴 계획이 없다고 답했다. 물론 그 이유는 뻔하다. 국내 고용시장이 경직돼 있고 고임금이 부담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해 한국의 생산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노동생산성은 세계에서 꼴찌 수준이고 정부 규제도 심각한 수준이다. 4차 산업혁명에도 제대로 준비가 돼 있지 않다.

韓, 비즈니스 효율성 매우 낮아

현대경제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국내 비즈니스 환경은 정부 효율성과 비즈니스 효율성, 투명성 지수 등에서 4만달러 국가들보다 낮다. 지금 한국에 필요한 건 4차 산업혁명에 부합하는 생산성 혁신이지만 혁신이 일어날 여지가 없다. 4만달러 시대에 어울리는 경제 구조를 갖춰야 하는데도 항상 노사 문제와 규제 등이 기업들을 옥죈다. 기업을 유인하는 정책은 거의 전무하다.

정부는 유턴기업 활성화 방안 등을 마련하고 세금 감면 등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주위에서 기업들이 돌아오고 있다는 소식은 안 들린다. 제조업으로 성장했고 제조업으로 승부를 봐야 하는 나라다. 아직 2만달러 패러다임에 국가와 기업이 갇혀 있다. 4만달러의 벽은 결국 제조 기업들이 돌파해야 한다. 그 기업들을 밀어주는 어느 누구도 보이지 않는다.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