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정명희 부산 북구청장 "복지예산만 70% 넘는 부산 북구…이대로 가면 재정 파탄"

입력 2019-01-28 17:23
문재인 대통령에게 직접 편지
기초연금 대상자 많아 부담 가중
일반주민 위한 예산 거의 없어
북구 산다는 이유로 불평등 대우

정부 지원 땐 도시 재생 주력
구포역 일대 개발해 일자리 창출
환경·교통 분야 개선 주력할 것


[ 김태현 기자 ]
민선 지방자치제 시행 이후 23년 만에 보수 텃밭을 갈아엎은 정명희 부산 북구청장(53·사진)은 28일 “관련 법령을 개정해 주민을 위한 예산을 확보해 발로 뛰면서 지역의 재개발 그림을 제대로 그려 시민이 행복한 마을로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정 구청장은 이날 부산 북구청장실에서 한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된 부산 북구에도 도시 재생이 활발히 추진되고 있어 편리한 교통망과 주민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며 “복지예산 문제로 걸림돌이 되고 있지만 개선에 총력전을 펴겠다”고 말했다. 국가가 사회복지사업을 확대해 지방자치단체가 주민을 위한 일반사업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재정이 나빠진 점을 개선하지 않고서는 북구의 혁신은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는 게 정 구청장의 설명이다.

정 구청장은 지난 20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복지비 부담 가중에 대한 어려움을 개선해 달라고 편지를 보냈다. 정부기관에 개선을 호소했으나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다. 문 대통령은 정 구청장에게 타당한 문제 제기라며 기초연금법 시행령 개정 등 제도 개선을 지시했다.

정 구청장은 정부지원금이 확보되면 주민을 위한 사업을 펼칠 계획이다. 기초연금법 분담액 때문에 재정난에 처한 정 구청장에게 원인과 개선 방안 등을 들어봤다.

▶청와대에 기초연금법상의 사회복지비 비중이 너무 커 개선을 요청했는데 핵심 내용은 무엇입니까.

“북구는 올해 본예산 4125억원의 71.4%(2945억원)가 사회복지비 예산으로 지출됩니다. 남은 29% 예산으로 공무원 인건비 등의 경비를 지출하고 나면 일반 주민을 위한 예산은 거의 없죠. 구민은 북구에 산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불평등 대우를 받고 있습니다. 사회복지사업을 하는 것은 찬성하죠. 하지만 국가 사무인데도 단지 대상자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구 재정이 파탄 난다는 것은 불합리합니다.”

▶북구가 유달리 기초연금 대상자가 많아 고통받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부산 북구뿐 아니라 광주 북구와 서구, 대구 달서구 등 3곳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부산 북구가 기초연금 대상자가 많은 이유는 국가의 이주정책에 의해 영구 임대아파트를 많이 지어 몰려 있기 때문입니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와 장애인 등이 지속적으로 입주하고 있어 대상자는 늘어나고 있습니다. 북구는 사업체와 공장이 거의 없어 세금도 적게 걷힙니다. 하지만 기초연금 예산은 올해 부산 16개 구·군 가운데 가장 많은 금액인 79억5600만원(기초연금 수급자 3만1000여 명)이 필요합니다. 오는 4월부터 부담이 더 늘어나 구청 살림이 거덜 날 지경입니다.”

▶구체적으로 정부에 요구한 내용은 무엇인가요.

“사회복지비 지수가 55% 이상이면서 재정자주도가 35% 미만인 기초자치단체는 기초연금법 시행령을 개정하거나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을 개정해 달라는 것입니다. 국가의 기초연금 부담을 더 늘려 기초단체의 재정 부담을 덜어달라는 것이죠. 국비 지원을 10~20% 늘려 지원해주면 숨통이 트일 수 있을 것입니다.”

▶기획재정부, 국회 등에 개선해 달라고 요청하지 않고 바로 청와대에 청원한 이유가 있나요.

“왜 안 해봤겠습니까. 정부기관에 수차례 이야기해도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지 못한 거죠. 생각 끝에 청와대에 편지를 보냈습니다. 구청은 죽기 일보 직전인데 정부기관은 대책을 마련해주지 않고 있고, 법 개정으로 이어지기까지는 시간이 너무 걸릴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복지사업은 국가사업이죠.”

▶재정이 많이 어렵다고 하는데 이대로 두면 어떤 일이 예상됩니까.

“정부의 특별 조치가 취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늘어나는 복지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올해 공무원 인건비 130억원을 편성하지 못했습니다. 복지 대상자가 아니라 일반 주민을 위한 사업을 제대로 펼칠 수 없습니다. 걱정입니다. 정부의 복지비 지원이 어떤 방식으로든 이뤄져야 합니다. 정부는 2008년 기초생활수급비 부담이 많은 지자체에 국비 지원액을 10% 늘린 사례 등을 참고해 개선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주민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가용재원을 활용하는 방법은 없나요.

“가용재원은 10원도 없습니다. 취임할 때 40억원 있었는데 오르거나 신설된 기초연금과 아동수당에 사용하느라 한 푼도 없습니다. 사회복지회관 운영비와 사회복지사 인건비, 보훈단체 지원금도 나가야 하지만 예산이 없습니다. 당연히 그동안 일반 구민을 위한 사업도 제대로 할 수 없었죠. 생활체육행사도 해마다 열지 못하고 2년에 한 번 열 정도로 예산이 빡빡합니다.”

▶정부에서 지원금을 준다면 우선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북구가 바뀌었다는 말을 듣도록 환경과 교통 등 낙후된 분야 지표를 끌어올리겠습니다. 구포역 일대 이용자 수가 감소하면서 상인들도 어렵죠. 역세권을 제대로 변화시켜 일자리를 창출하고 주민들이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겠습니다. 전국 최대 규모였던 구포가축시장을 폐쇄하고 업종 전환과 새로운 장소로 꾸밀 계획을 수립 중입니다. 금정산과 낙동강 등 자연경관을 활용해 북구를 부산에서 가장 아름답고 살기 좋은 힐링 도시로 키우겠습니다.”

■23년 만에 보수 텃밭서 승리…'정다르크' '철의 여인' 별명

정명희 부산 북구청장은 ‘열정 정치인’이다. 일의 추진력 하나만은 부산시의원 시절에 딱 부러진다는 평가를 받았다. 24시간을 일한다는 각오로 발로 뛰어 ‘정다르크’ ‘철의 여인’이란 별명을 얻었다. 그는 2014년 부산시의회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로 처음 정치에 입문했다. 자유한국당 텃밭으로 여겨지던 ‘서부산권 격전지’ 부산 북구에 새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지난해 6·13 지방선거에서 북구 첫 여성 구청장에 도전해 한국당 후보의 아성을 무너뜨리고 당선됐다. 부산지역 구청장 중 가장 높은 득표율(56.5%)을 기록했다.

경주에서 태어나 경남 진해여중·고를 졸업했다. 부산대 약대를 나온 정 구청장은 약바르게알기운동본부장을 맡아 사회공헌 활동을 했다. 약물 부작용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40여 명의 약사를 모아 부산약물감시센터를 전국 최초로 설립했다.

부산=김태현 기자 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