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껏 신나게 달리다보니 목적지를 잃은 걸까.
영화 '뺑반'은 설정만 놓고 봐도 땡기는 영화다. 폭주를 일삼는 재벌과 경찰의 통쾌한 한판승, 여기에 '뺑소니 전담반'이라는 배경을 전면에 내세우며 대놓고 카체이싱을 선보이겠다고 예고하니 궁금증을 자극할 수 밖에.
전작 '차이나 타운'으로 섬세하고 묵직하게 감정으로 극을 이끌었던 한준희 감독의 차기작이라는 점에서 기대감이 더해졌다.
하지만 막상 베일을 벗은 '뺑반'은 공효진, 류준열, 조정석, 염정아, 전혜진이라는 배우들의 장점조차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각각의 캐릭터의 매력을 살리기 위해 이런저런 설정을 넣었지만, 하나로 어우러지지 못한 것이다. 중구난방으로 퍼지는 이야기 속에 '나쁜놈 때려잡기'라는 목적을 달성하지만 이미 이야기의 기운은 모두 빠진 후였다.
시작부터 선악구도는 확실하다. 나쁜 놈은 F1 레이서 출신 사업가 정재철(조정석 분). 정재철이 경찰 수뇌부에까지 뇌물을 전달했다는 정황을 잡았지만, 경찰청 내사과 소속 경찰들은 정재철이 친 덫에 걸려 '강압수사'라는 누명을 쓰고 팀이 해체될 위기에 처했다. 1년 넘게 정재철을 쫓던 은시연(공효진 분)도 좌천을 피하지 못하고 뺑소니전담반 '뺑반'으로 오게됐다.
그런데 알고보니 뺑반은 능력자들의 집합소였다. 영수증이나 붙이는 만삭의 한량인 줄 알았던 뺑반 수장 우선영(전혜진 분)은 경찰대 수석을 차지한 실력파. 매뉴얼보다는 손으로 느끼고, 입으로 맛보며 현장을 수사하는 괴짜인 줄 알았던 서민재는 누구보다 투철한 사명감을 가진 에이스였다.
여기에 서민재의 주변사람인물들도 보통은 아니다. 경찰보다 먼저 현장에 뜨는 레커차 기사 한동수(키), 자동차의 작은 부속물만으로도 뺑소니 증거를 찾아내는 전직 형사 카센터 사장(이성민 분)까지 엘리트 경찰 은시연도 무시할 수 없는 번뜩이는 능력을 보여준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캐릭터에 대한 소개를 끝내고 본격적으로 갈등구조를 풀어나기기 시작하면서부터 '뺑반'의 힘은 풀어지기 시작한다. 캐릭터 하나하나는 매력적이지만 이를 하나로 모으는 가지가 빈약했던 탓이다. 함께 힘을 합쳐 극을 끌고 가야할 캐릭터들이 각자의 이야기만 하고 있고, 설상가상으로 신파까지 끼얹는다.
화려한 콘셉트카와 레이싱카들의 카체이싱이 등장하지만 분위기를 반전시키기엔 역부족이다. 빗속의 질주까지 최선을 다해 색다른 카체이싱을 보여주려 고민한 흔적도 보인다. 하지만 이야기가 받쳐주지 않는 볼거리라는 점에서 몰입도는 떨어진다.
배우들의 열연이 그저 아쉽기만 한 영화다. 오는 30일 개봉. 15세 관람가. 런닝타임 133분.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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