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현의 문화살롱] 세계 CEO들이 베르사유로 간 까닭

입력 2019-01-24 18:17
고두현 논설위원


[ 고두현 기자 ] 다보스포럼 개막 하루 전날인 지난 21일 파리 근교의 베르사유궁에 글로벌 최고경영자(CEO)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마이크로소프트(MS)와 제너럴일렉트릭(GE), JP모간체이스 등 굴지의 기업 대표가 150명이나 됐다. 초청자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었다. 기업인들은 이날 마크롱 대통령과 각부 장관들을 만났다. 일부는 대통령과 1 대 1 미팅을 했다.

이 자리에서 마크롱 대통령은 정부의 노동 개혁과 일자리 창출 계획을 소개하며 프랑스에 투자해 줄 것을 호소했다. 모임의 주제도 ‘프랑스를 택하세요(Choose France)’였다.

대통령이 ‘주식회사 프랑스’의 대표이사로 변신해 직접 투자 유치에 나서자 각국 기업인들이 화답했다. 의료기기 제조회사인 마이크로포트는 파리 연구개발센터 확장 등에 5억5000만유로를 투자하기로 했다. 시스코시스템스는 6000만유로 투자를 약속했다. MS와 IBM은 인공지능(AI) 개발센터를 프랑스에 짓기로 했다. 마크롱이 이날 하루 유치한 투자금액은 6억유로(약 7700억원)에 달했다.

佛 대통령에 '통 큰 투자' 화답

다음날 제이미 다이먼 JP모간체이스 회장은 다보스에서 “올바른 정책을 올바른 방법으로 추진하는 마크롱 대통령에 반했다”며 “기업과 일자리를 살리면서 저소득층도 끌어올리는 그는 유럽의 희망”이라고 극찬했다. 마크롱은 지난해 1월에도 다보스포럼 전날 이곳에 기업인 140명을 초청해 ‘프랑스 세일즈’를 펼쳤다.

이 덕분에 베르사유궁은 정상회담이나 국제행사뿐만 아니라 기업인을 위한 비즈니스 공간으로 주목받고 있다. 전임 대통령들인 프랑수아 올랑드와 니콜라 사르코지가 임기 중 한 번씩 소규모로 개최한 CEO 초청 행사를 마크롱은 매년 대규모로 열고 있다. 국제사회도 “일자리에 도움이 된다면 어느 기업인이든 만나겠다”는 마크롱에 호응하고 있다.

베르사유궁을 찾은 CEO들은 “프랑스 경제 외에 역사와 문화에 대해서도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됐다”고 말한다.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거울의 방’에는 근현대사의 굴곡진 장면이 새겨져 있다. 보불전쟁에서 이긴 프로이센이 1871년 독일 황제 즉위식을 여기에서 열었다. 반세기 뒤인 1919년에는 1차 세계대전에 대한 책임을 물어 독일에 거액의 배상금을 부과한 베르사유조약이 이곳에서 체결됐다.

경복궁에서도 '코리아 세일즈'를

이런 영욕의 순간을 지켜본 ‘거울의 방’은 길이 73m에 너비 10.4m 규모다. 정원 쪽으로 17개의 창문이 있고, 반대편 벽에 17개의 거울이 배열돼 있다.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2002년 삼성이 이곳을 통째로 빌려 세계 기업인과 기자들 앞에서 글로벌 로드쇼를 펼쳤다. 정상 만찬이나 외교행사 외에는 좀체 대관해 주지 않던 프랑스가 삼성에 특별히 허용했다. 그날 베르사유궁 광장에 펄럭인 태극기는 한국 기업을 위한 최고 배려의 증표였다. 2014년 현대미술의 거장 이우환이 베르사유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베르사유 모임’ 같은 국가 세일즈 행사가 불가능한 걸까. 서울에도 멋진 궁궐이 있다. 경복궁의 경회루는 ‘동양 건축의 꽃’으로 불린다. 근정전 및 종묘정전과 함께 조선 3대 목조건물로 꼽힌다. 그중에서 단일평면이 가장 크다.

길이 33m, 너비 29m로 ‘거울의 방’보다 넓다. 300명 이상을 거뜬히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다. 우리 문화유산을 자랑하면서 정상회담이나 국빈 만찬을 열기에 좋다. 이 아름다운 궁에서 대통령이 글로벌 기업인들을 초청해 코리아 투자 설명회를 연다면 더없이 좋겠다.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