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 함께 책속으로] "글자는 생물…서로 다른 문화권 속에서 관계 맺고 진화하죠"

입력 2019-01-24 17:22
유지원 홍익대 시각디자인과 겸임교수

글자 풍경


[ 윤정현 기자 ]
“디자인이나 미술, 예술 얘기뿐 아니라 과학과 문학, 역사 등 어떤 주제든 담을 수 있는 단어를 생각했어요. 글자와 관련돼 있지만 디자인에 한정된 얘기는 아니니까요.”

《글자 풍경》을 쓴 유지원 홍익대 시각디자인과 겸임교수(사진)는 지난 23일 ‘풍경’이라는 단어를 제목으로 선택한 것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글자란 생물과 같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책에서도 그는 “글자는 기술과 문화, 자연환경의 생태 속에서 피어난다”며 “문화권과 시대별로 글자들은 서로 관계를 맺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생멸하고 성장하고 진화해왔다”고 서술한다.

책은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타이포그래피 연구자 시선으로 글자에 새겨져 있는 세상을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낸다.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깊이를 더했다. 저자가 직접 만든 그래픽과 현장에서 찍은 사진 등 국내에서 보기 드문 시각적 자료들도 곁들였다. 유 교수는 “10여 년 전 독일 유학 시절부터 언젠가 한 번은 이런 콘텐츠의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해왔다”며 “차곡차곡 모아둔 자료들을 이번에 쓸모 있게 사용했다”고 말했다.

책을 펼치면 ‘추천의 글’에 박찬욱 영화감독 이름이 있는 것도 색다르게 다가온다. 박 감독은 “글자에 관한 글을 읽는다는 것은 매우 성찰적인 행위”라며 유 교수를 “과학자의 머리, 디자이너의 손, 시인의 마음을 가진 인문주의자”라고 소개한다. 박 감독과는 원래 알던 사이가 아니었다. 유 교수가 블로그 등에 쓴 글들을 보고 박 감독이 먼저 출판사에 추천한 것이 인연이 됐다.

책 1부는 독일 이탈리아 영국 등 유럽과 아시아 각국의 글자가 빚어낸 도시의 풍경으로 채웠다. 이와 관련해 서문에서 유 교수는 직접 가보지 못해 다룰 수 없었던 지역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러시아와 북유럽, 아일랜드와 북아프리카, 그리고 북한을 꼽았다.

유 교수는 “다른 나라에 비해 한글은 상대적으로 지역성이나 다양성이 부족하다고 여겼는데, 사실 북한을 빼놓고 본 것”이라며 “북한에서 쓰는 폰트의 양상을 보면 우리가 모르던 한글의 다른 측면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책 뒷부분엔 한글 글자체 디자이너들의 열악한 현실에 대한 이야기가 눈길을 끈다.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투여해서 완성되는 작품인데 보상이 너무 미미하다는 지적이다. 유 교수는 이에 대한 대안으로 기업이나 기관이 한글 폰트 디자이너들에게 충분한 라이선스를 제대로 지급하면서 새롭게 디자인된 한글 폰트들을 기본 폰트로 꾸준히 업그레이드해서 탑재하는 방식을 제안한다.

그는 “마이크로소프트나 애플에서는 최고의 디자이너들에게 맡기고 폰트로 경쟁한다”며 “폰트 디자인에 대한 인식부터 바꿔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지원 지음, 을유문화사, 300쪽, 1만5000원)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