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가는 사회'와 싸우는 日, 간병로봇에 국운 걸었다

입력 2019-01-23 17:34
2019 일본리포트 - 일본을 보며 한국을 생각한다
고령화 극복기술을 미래산업으로

세계 첫 초고령사회 진입
"노동력, 간병인으로 유출 방지…간병로봇시장 10조엔까지 키울 것"

IoT·AI로 '간호사 부족' 넘자, 의약품 밀봉·수술기기 정리로봇 판매
출산율 감소하면 연금 자동삭감…재정고갈 늦추는 제도로 평가받아


[ 정영효 기자 ] ‘백발’ 더 성성한 신도시 - 10년 전과 달라진 도쿄의 일상

일본은 세계 최고의 ‘초고령 사회’다. 도쿄 등 수도권 신도시에선 고령화 문제가 더 심각하다. 고도성장기 수도권 베드타운에 입주했던 세대가 최근 몇 년 새 일제히 고령자군에 진입했기 때문이다. 최근 10년간 도쿄 인근 가나가와현, 지바현, 사이타마현에 있는 18개 신도시의 고령화율(65세 이상 주민비율) 증가속도는 전국 평균의 최고 2.3배에 이른다. 도쿄 주변을 도넛처럼 둘러싼 신도시들은 ‘고령화 문제’의 상징이 돼버렸다.

지난 18일 도쿄 고토구 도쿄국제전시장(도쿄빅사이트)에서 열린 로봇박람회에서 단연 인기를 모은 곳은 사이버다인 전시관이었다. 전시관을 찾은 관람객이 로봇슈트를 착용하고 시연해볼 수 있어서였다. 사이버다인은 일본 최초로 로봇슈트를 개발해 10년 만에 시가총액 1조원을 넘긴 벤처 신화의 모델이다. 기자가 로봇슈트를 착용하고 전원 스위치를 누르자 허리 부분에 팽팽한 긴장감이 전해졌다. 힘을 가하니 로봇슈트가 허리를 꼿꼿하게 받쳐주면서 좀처럼 움직이지 않던 여성을 가뿐하게 들어올릴 수 있었다. 회사 관계자는 “로봇슈트를 착용하면 본인의 힘보다 40%를 더 낼 수 있다”고 말했다. 박람회에는 사이버다인 외에 10여 개 회사가 로봇슈트를 출품했다. 독일에서 온 기업도 있었다. 쓰임새 또한 간병보조를 넘어 산업현장, 레포츠 등으로 다양해져 로봇슈트가 이미 상용화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더 이상 틈새시장 아니다”

도쿄 오타구에서 간병시설을 운영하는 젠코카이는 로봇슈트를 적극적으로 도입해 경쟁력을 높인 사례다. 2015년까지만 해도 젠코카이의 간병직원 1명이 돌보는 환자 수는 1.86명으로, 전국 간병시설 평균인 2명을 밑돌았다. 보조 로봇을 도입한 결과 지금은 1인당 대응 가능한 환자 수가 2.68명으로 늘었다.

젠코카이 같은 회사가 늘면서 일본에서 간병 로봇 분야는 이미 어엿한 시장으로 성장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2012년 1조엔이던 간병로봇 시장이 2035년 10조엔으로 10배 커질 것으로 예상했다. 사이버다인 같은 벤처기업뿐 아니라 가전업체 파나소닉과 변기 등 욕실용품 전문업체 토토 등 대기업도 간병 로봇과 보조기구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파나소닉은 인공지능(AI)을 이용해 노인들의 낙상을 방지하는 침대를, 토토는 거실에 설치할 수 있는 이동식 변기의 실용화를 마쳤다.

대기업과 벤처기업의 간병로봇 개발 붐은 틈새시장 공략 차원이 아니다. 사회 전체가 절박함을 느끼고 있다. 1995년과 2010년 세계 최초로 고령사회(65세 인구가 전체의 14%를 초과하는 사회)와 초고령사회(65세 인구비율 21% 초과)에 진입한 일본은 20년 이상 저출산·고령화와 싸워온 국가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온갖 방안을 신산업으로 키워나가면서 세계에서 가장 먼저 실버산업을 발달시켰다.


국민연금도 출산율에 연동

의료산업이 대표적이다. 2016년 기준 일본의 간호직원은 166만 명이다. 초고령화 진전에 따라 2025년이면 13만 명에 달할 간호사 부족문제를 정보기술(IT)을 활용한 ‘스마트 의료’로 극복한다는 복안이다. 파나소닉은 약과 검사체를 자동으로 운반하는 자율반송형 로봇 ‘호스피(HOSPI)’를 개발했다. 기계 전문업체 크로리는 의료약품의 밀봉과 수술기기의 정리 등 세세한 작업이 가능한 로봇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4차산업 기술을 활용한 현장 자동화 의료제품 시장은 2025년까지 1685억엔 규모로 커져 2016년보다 2.2배 늘어날 전망이다.

세계적으로 ‘로봇을 활용한 자동화가 인간의 일자리를 뺏을 것’이란 우려가 높지만 인구가 줄어드는 일본 사회는 반대다. 일본 취업정보회사 디스코의 니도메 마사로 사장은 “일손이 부족한 일본은 로봇을 이용한 자동화를 반기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은 연금제도에도 일찌감치 손을 댔다. 2004년 급여의 13.58%였던 연금 보험료율을 매년 0.354% 올려 2017년 18.3%까지 높인 뒤 고정하고 지급액은 57.7%에서 2023년 50.2%까지 단계적으로 낮추기로 했다. 기대수명이 늘어나고 출산율이 감소하면 그에 맞춰 지급하는 연금액을 자동으로 삭감하는 ‘거시경제 슬라이드’ 도입은 부족한 연금재정 고갈을 늦추는 획기적인 제도로 평가받는다. ‘돈은 우리가 내고 연금은 노인들이 타느냐’는 세대 갈등도 어느 정도 해소했다.

도쿄=정영효 기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