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부담없는 美 앨라배마·조지아…글로벌 기업 몰릴 수밖에"

입력 2019-01-23 17:27
한경-FROM 100 - '새해 경제 전망과 대응' 토론회

미국, 州별로 최저임금 차등 적용…앨라배마 등은 아예 기준 없어
美 1인당 소득 절반 수준인 한국, 최저임금 실질부담은 2배 달해
노동시장 구조개혁 집중하고 소득주도성장 궤도 수정해야


[ 김일규 기자 ]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조지아, 앨라배마가 어떻게 자동차 분야 신(新)산업지대가 됐는지 눈여겨봐야 합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최저임금이 주(州)별로 다른 미국에서 최저임금이 낮거나 기준이 아예 없는 이들 지역에 현대·기아자동차, 일본의 닛산과 마쓰다, 독일의 벤츠와 BMW가 진출해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국내 각계 전문가 100여 명이 참여하고 있는 민간 싱크탱크 ‘FROM 100’(대표 정갑영 전 연세대 총장)이 23일 ‘새해 경제 전망과 정책 대응’을 주제로 연 세미나에서다.

미국의 연방정부 기준 최저임금은 시간당 7.25달러지만 한국과 달리 주별로 차등 적용한다. 사우스캐롤라이나와 앨라배마는 최저임금 기준이 아예 없고 조지아는 5.15달러다. 성 교수는 “최저임금을 높여 경기가 개선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를 낮춰 기업을 유치하고 투자를 이뤄내야 경제가 성장하고 소득도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그는 미국 하버드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한국개발연구원(KDI) 부연구위원, KAIST 조교수를 거쳤다. 문재인 대통령의 자문기구인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최저임금 없는 싱가포르가 어떻게

성 교수는 이날 발제에서 소득주도성장의 핵심 정책인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을 비판했다. 한국의 경제 체력이나 현실적인 여건에 비해 최저임금이 급격하게 올라 고용 악화와 경기 하락으로 이어졌다는 지적이다.

성 교수에 따르면 1인당 국민총소득(GNI) 대비 최저임금 실질부담은 한국이 미국의 2.1배에 달한다. 한국의 최저 시급은 올해 8350원, 미국은 연방 기준 7.25달러로 비슷하지만 한국의 1인당 GNI는 약 3만달러로, 미국(약 6만달러)의 절반 수준이기 때문이다. 성 교수는 “미국보다 높은 최저임금 부담을 안고 있는 상태에서 2년간 30% 가까운 인상에 따른 비용 충격이 일자리를 줄이고, 경제를 어렵게 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성 교수는 싱가포르 사례도 들었다. 싱가포르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약 6만달러로 미국에 필적하지만 의무적으로 강제하는 최저임금(청소·경비 제외)이 없다. 성 교수는 싱가포르에 대해 “아시아 최고의 기업 환경으로 글로벌 회사들을 끌어들이고 있다”며 “최저임금이 있는 그 어떤 나라보다 많은 일자리와 소득을 이뤄내고 있다”고 말했다.

“수출기업 어려움 더 가중될 것”

성 교수는 소득주도성장 정책 전반에 대한 비판도 이어갔다. 정책 명칭부터 경제주체들을 혼란에 빠뜨렸다는 지적이다. 그는 “경제 성장이 곧 소득 증가”라며 “소득 증가로 소득을 늘린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했다.

소득주도성장이 경제 성장의 핵심 채널이 될 수 없다는 게 성 교수의 지적이다. 그는 “성장을 위해선 기술 진보와 인적 자본의 축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소득 불평등과 관련해선 청년 실업 및 노인 빈곤 문제 해결에 집중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이를 위해선 노동시장 구조개혁이 필요하다고 했다. 특히 한국과 같은 개방경제 국가에서 소득주도성장을 유지하기는 더 어렵다는 게 성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수출기업은 국내 임금 인상에 따른 비용 조건 악화에도 불구하고 해외에서 결정되는 수요 조건이 개선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며 “이 경우 오히려 국내 생산시설 활용도가 낮아질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성 교수는 올해 한국 경제가 조선, 자동차에 이어 반도체까지 어려워지는 가운데 국내에선 비용 충격, 국외에선 통상 환경 악화로 어려움이 가중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그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실질적인 궤도 수정 여부가 올해 경제 운용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