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민주노총, 누구 좋으라는 싸움인가

입력 2019-01-22 18:10
'재벌 개혁'을 투쟁목표로 내세운 민주노총
기업 脫한국 내몰고 기업가정신만 위축시켜
싸우다 누구도 살 수 없는 그런 한국 바라나

황영기 < 법무법인 세종 고문·前 금융투자협회장 >


문재인 정부의 주요 주주 중 하나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민주노총은 1995년 설립 이래 강력한 결집력과 과감한 투쟁력으로 세를 넓혀 오다가, 2016년 늦가을 시작된 촛불집회 주도 세력으로 등장하면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및 문재인 정부 탄생에 결정적 기여를 한다. 그 공로로 노동계는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 근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같은 선물을 받았다. 자영업자, 소상공인을 비롯한 경제계 반발이 격렬했으나 민주노총은 그 정도 저항쯤은 가볍게 통과한다는 식의 위력을 보여 줬다.

그런 민주노총이 지난 2일 위원장 신년사에서 새해 사업 목표를 ‘사업장 담장을 넘어 한국 사회 대개혁’으로 삼겠다고 하면서, 재벌 체제와 재벌 경영이 낳는 사회적 불균형과 양극화를 더 이상 방치하지 않기 위해 올해 주요 투쟁 목표의 하나로 재벌 개혁을 들고나왔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이외에도 국가보안법 폐지, 주한미군 철수, 보수언론과 관료세력의 적폐동맹 분쇄 같은 ‘비노동적’ 목표도 제시하면서 ‘대개혁’을 향한 진군의 깃발을 높이 들었다.

필자는 노동조합의 정치활동 허용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잘 알지 못하므로 대개혁에 대해서는 평가할 식견이 없음을 자인하지만, 재벌개혁 문제는 그동안 경제계와 금융계에 몸담은 경험으로 예상 진로를 추측해 보고자 한다.

우선 싸움은 격렬해질 것이다. 노동계의 재벌에 대한 공격 포인트가 임금, 복지 같은 ‘노동적’인 이슈보다는 지배구조 개혁이나 불법승계 타파 같은 총수의 지배력 약화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재벌 처지에서는 목에 칼이 들어오는 꼴이라 타협의 여지가 없을 수밖에 없다. 재벌로서는 과거처럼 일감 몰아주기나 차명계좌를 통한 편법승계가 어려워진 만큼 현행법 테두리 안에서 최선의 방어를 할 것이다. 그리고 총수 일가의 지배력을 약화시킬 가능성이 있는 유상증자나 외부 차입에 의한 사업 확장은 말도 못 꺼낼 것이다. 재벌급 중견회사들은 최고 65%에 달하는 상속·증여세를 내느니 미리 사업을 처분하든지, 현금배당이나 유상감자 등의 방법을 통해 사업 규모를 줄이면서 세금 납부할 현금을 마련하기 위한 궁리를 할 것이다. 소위 기업가정신은 간곳없이 될 것이다.

둘째, 재벌들은 국내 생산을 줄이고 해외로 생산기지를 옮길 것이다. 최근처럼 노동계 파워가 세지기 전부터 여러 가지 이유로 기업들은 생산기지를 해외로 이전하는 중으로, 그 속도가 빨라질 것이다. 그동안 강성 정규직 노조의 폐해를 피하느라 비정규직이라든지 하청업체 외주를 활용해왔는데, 이제는 그 모든 것이 어렵게 됐다. “앉아서 당할 수는 없지 않냐”는 말에 재벌을 위시한 기업들 고뇌가 녹아들어 있다.

셋째, 우리는 재벌을 비롯한 대기업들의 ‘말의 성찬’을 보게 될 것이다. 수조원의 대규모 투자 약속에는 해외 투자도 있고 인력 감축을 위한 자동화, 로봇 투자도 들어 있다. 중소기업과의 상생 프로그램은 그 누구도 현실성 있는 방안을 갖고 있지 못하지만 아무도 하지 않겠다고는 못하는 상황이다. 사회공헌을 확대하고 사회적 가치를 추구한다는 등의 광고들은 언론과의 관계를 위한 보험금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기업의 제일 중요한 사명인 ‘돈 버는 것’과 관련된 이야기는 속에 꿍쳐 놓고 말이다.

어찌 이뿐일까. 재벌가 개인 주택 앞에서까지 인신공격을 퍼부어대고 걸핏하면 배임, 횡령, 노사 등의 문제로 형사 고발해 압수수색과 검찰 조사의 수모를 받게 하는 노동계 전술에 질린 나머지, 아예 대응을 포기하거나 자리를 내던지는 기업인이 늘고 있다.

민주노총은 일단 싸움에서 이기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싸움은 이기는 것만 중요한 게 아니라 언제 어디서 누구와 싸우냐도 중요하다. 1972년 한국의 음유시인 김민기는 ‘작은 연못’이란 노래를 발표했다. “어느 맑은 여름날 연못 속에 붕어 두 마리 서로 싸우다 한 마리가 물 위에 떠오르고 그 여린 살이 썩어 들어가 물도 따라 썩어 들어가 연못 속에선 아무것도 살 수 없게 되었죠.”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노래하던 김민기의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저릿해진다. 도대체 이 작은 연못에서 누구 좋으라고 싸우고들 난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