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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법조인 열전 (10) 정계진출 많은 사법연수원 14기
홍준표, 모래시계 검사 유명…추미애, 첫 女판사 출신 의원
홍일표·정종섭 의원 등도 동기
'특수통' 김진태 前검찰총장, '노태우 비자금' 등 큰 사건 수사
채동욱 前총장은 변호사로 인기
대법관·헌법재판관은 5명
"변호사 성공보수 약정은 무효"…권순일 대법관 판결로 큰 파장
강일원·안창호 前헌재재판관, 작년 박근혜 탄핵 심판 맡기도
[ 신연수 기자 ]
사법연수원 14기는 법조계에서 ‘금배지 공장’으로 불린다. 법조인 경력을 바탕으로 여의도에 진출한 사람이 유독 많기 때문이다.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를 비롯해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 주호영·홍일표·정종섭 한국당 의원 등 전·현직 국회의원이 14명에 달한다. 검찰에서는 두 기수에 한 명도 나오기 어렵다는 검찰총장이 두 명이나 나왔다. 대법관 2명, 헌법재판관 3명을 배출했다. 현직 고등법원 부장판사도 여럿이라 최고 재판소를 이끌어 갈 인물이 더 나올 가능성도 크다. 연수원 14기는 모두 310명으로 사법시험 22회(1980년)~24회(1982년) 합격자들이다.
한때는 3당 대표가 모두 14기
문재인 정부 초기에는 3당 대표가 모두 연수원 14기 출신이었다. 당시 추미애 민주당 대표와 홍준표 한국당 대표, 주호영 바른정당 대표 권한대행(원내대표)은 여야 긴장 완화의 수단으로 ‘동기모임’을 활용하기도 했다. 각각 집권 여당과 제1야당 대표를 지낸 추 의원과 홍 전 대표는 모두 대구에서 살았던 데다 연수원 같은 반(2반)에 배정돼 인연이 깊다.
최근 유튜브에 ‘홍카콜라’라는 채널을 개설하고 정계 복귀를 선언한 홍 전 대표의 원래 별명은 ‘모래시계 검사’였다. 1985년 청주지검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한 홍 전 대표는 다수의 조직폭력단을 처벌하고 ‘5공 비리’를 파헤쳤다. 서울지검 강력부에서 이른바 ‘슬롯머신 사건’을 맡아 당시 정권 실세들을 구속했다. 그의 활약상은 1995년 방영된 인기 드라마 ‘모래시계’의 모티브가 됐다. 홍 전 대표는 일약 스타덤에 올랐고 신한국당에 입당해 제15대 총선거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경남지사 시절에는 1조3000억원가량의 부채를 해결하는 등 성과를 냈으나 진주의료원 폐쇄, 무상급식 폐지 등으로 비판의 목소리도 많이 들었다. 19대 대통령 선거에선 한국당 후보로 출마해 문재인 당시 민주당 후보에 이어 2위(득표율 24%)에 올랐다.
홍 전 대표와 비슷한 시기에 정계에 입문한 추 의원은 국회에서 ‘최초’란 수식어를 달고 다닌다. 그는 1995년 광주고등법원 판사로 재직하다가 김대중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총재의 권유로 입당한 ‘DJ 키즈’다. 부대변인으로 정당 생활을 시작했고 이듬해 15대 총선에서 최초의 여성 판사 출신 국회의원이 됐다. 20대 총선까지 연속으로 당선돼 최초의 여성 지역구 5선 의원이라는 기록도 갖고 있다. 2016년 민주당 계열에서 최초의 영남 출신 당대표를 맡았고 처음으로 임기를 다 채웠다.
검찰총장 두 명 배출 ‘이례적’
연수원 14기는 이례적으로 검찰총장을 두 명이나 배출했다. 채동욱, 김진태 전 총장이 주인공이다. 2013년 4월 취임한 채 전 총장이 혼외자 의혹으로 6개월 만에 낙마하자 동기인 김 전 총장이 바통을 넘겨받았다.
김 전 총장은 검사 시절 ‘특수통’으로 이름을 알렸다. 비자금 조성 의혹을 받던 노태우 전 대통령을 직접 조사했고 한보그룹 비리, 김대중 전 대통령 아들 홍업씨 비리 등 굵직한 사건 수사를 맡았다. 그는 서울대 법대 재학 시절 유신반대 운동을 하다 한 사찰에 몸을 숨긴 것을 계기로 독실한 불교 신자가 됐다. 불교와 한학에 조예가 깊어 수필집도 냈다. 채 전 총장은 낙마 후 변호사로 개업해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에서 주가를 높이는 중이다.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23기)과 절친한 사이로 알려졌다.
법관의 길을 걸었던 권순일, 이기택 판사는 대법관이 됐다. 권 대법관은 서울대 법대를 다니던 중에 ‘소년 급제’를 했고, 연수원을 차석으로 수료했다. 그는 2015년 7월 “변호사의 형사사건 성공보수 약정은 무효”라는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주심을 맡아 법조계에 적잖은 파장을 몰고 오기도 했다. 이 대법관은 자타가 공인하는 민법 전문가다. 법관들의 참고서로 꼽히는 민법·민사소송법·민사집행법 주석서를 펴냈고, 법원 내 학술단체인 지적재산권연구회 회장도 맡았다. 시력이 매우 좋지 않지만 암기력이 뛰어나 대법관 임명 당시 인사청문회 답변서와 취임사를 통째로 외워서 말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MB 사건 맡은 강훈 변호사
지난해 9월 임명된 이석태 헌법재판소 재판관은 법관 경력 없이 변호사로만 지내다 헌법재판관에 오른 첫 사례다. 그는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면서 동성동본 금혼 규정과 호주제 폐지 등에 앞장섰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회장과 참여연대 공동대표, 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장 등을 지냈다. 2003년 노무현 정부 시절 문재인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 밑에서 공직기강비서관으로 일하기도 했다. 정치적 편향성 등을 이유로 국회 동의를 얻지 못한 채 헌법재판관이 됐다.
강일원 전 헌법재판관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심판의 주심을 맡아 심리와 결정문 작성을 주도했다. 강 전 재판관은 이용훈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에서 국민참여재판, 로스쿨 도입 등 사법개혁 정책을 설계한 인물이다. 대검찰청 공안기획관·서울고검장 출신인 안창호 전 헌법재판관은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박 전 대통령 탄핵 결정문에 성경 구절을 인용해 화제가 됐다.
재야에서 가장 화제인 연수원 14기 인사 가운데 한 명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다스 횡령·뇌물 등 형사소송 대리를 맡고 있는 강훈 변호사다. 강 변호사는 1998년까지 판사 생활을 하다 퇴직하고 법무법인 바른을 창업했다. 2008년 이 전 대통령 재임 시절 청와대 법무비서관을 지낸 인연이 있다. 이 전 대통령 변호를 맡기 위해 본인이 세우고 키워낸 바른에서 나오는 결단을 내렸다. 바른은 올해 1월 기준 국내 변호사 수 7위의 대형 로펌이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