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회복기 재활병원'이 필요한 이유

입력 2019-01-21 17:25
노인 환자를 요양원서 돌보게 하기보다
재활치료 집중해 독립생활토록 돕는 게
사회 경제적으로나 삶의 질에도 바람직

방문석 < 서울대 의대 교수·재활의학 >


간혹 동창이나 선후배, 지인이 오랜만에 연락을 해오면 부모님 건강 문제를 상의하기 위한 경우가 많다. 뇌졸중으로 인해 마비가 오고, 치매가 진행되며, 지병이 있거나 쇠약해져 움직이기 힘든 점에 관해 조언을 구하고는 한다. 상태는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는 통원 치료나 짧은 입원 치료로 좋아질 수 있는 경우고, 둘째는 적극적인 재활 치료가 필요한 경우 그리고 셋째는 재활 가능성이 없어 요양과 돌봄이 필요한 경우다.

첫 번째라면 병·의원을 방문해 치료하면 된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사례라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고령사회에 진입해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데다 개별 가계를 넘어 사회·경제적으로 큰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한국보다 일찍 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의 대처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장애가 발생했거나 거동이 어려운 노인을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에 모시는 사례가 많은데 이에 따른 사회적 비용이 급속히 늘고 있다. 요양과 돌봄이 필요하면 요양병원이나 요양원 같은 시설에서 지내도록 하기보다 탈(脫)시설화해 지역사회 공동체에서 지내고 돌봄을 받도록 하는 ‘커뮤니티 케어’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까닭이다. 사회·경제적 측면뿐 아니라 삶의 질과 인권 측면에서도 바람직한 방향이다. 커뮤니티 케어 자체는 복지정책이 주된 내용이지만 의료적인 면에서 이를 정착시키려면 의사의 왕진, 방문 간호, 방문 치료 등이 활성화돼야 할 것이고, 가정에서 사용하는 각종 재활 보조기구 보급이 더 활발해져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에 적절한 시스템이 없는 분야가 적극적인 재활이 필요한 경우다. 정부는 회복기 재활병원 시범사업을 실시해 이에 대한 준비를 하고 있다. 회복기 재활은 집중적인 재활 치료를 통해 불필요한 병원 입원 기간을 줄이고 치료 후 퇴원해 지역사회에서 독립적인 생활을 하도록 하는 게 목표다. 그러기 위해 급성기 치료 때부터 하던 약물치료, 재활간호, 물리치료, 작업치료, 심리치료, 재활 보조기구 등 여러 치료 요소를 투입해 최대한 치료 효과를 이끌어내야 한다. 투입하는 인력이 많고 넓은 치료 공간도 필요하며 비용도 많이 드는 과정이다. 그러나 치료 후 환자의 독립적인 생활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전체적인 의료비와 사회적 비용은 크게 줄어든다.

뇌과학이 발달해 새로운 신경재활이 적용되고, 재활공학의 발전으로 재활로봇 등 첨단 기술이 치료에 적용된다. 쉽게 말해 재활치료 대상 환자는 의사, 간호사 외에도 여러 직종으로부터 다양한 프로그램의 의료서비스를 동시에 받는, 비용이 많이 드는 재활치료를 받아야 한다. 국민건강보험 체계가 이에 대한 비용을 제대로 지급하지 못하면 재활 대상인 환자가 질 낮은 요양서비스를 받고 치료의 효율성은 떨어질 것이다. 낮은 치료 효율은 불필요하게 입원 기간을 몇 년씩 연장시켜 결국 경제적으로도 효율성이 떨어진다. 이를 위해 지금은 의료법상 존재하지 않는 재활병원이 종합병원, 병의원, 요양병원 사이에 새로이 정의되고 신설돼야 할 것이다.

외국의 사례를 보거나 우리 사회의 발전과 경제 규모를 감안하면 고령사회의 재활과 요양 대책은 당면한 문제다. 우리 가족 구성원의 문제이고 이웃이 겪을 문제이며 지역사회, 국가 전체의 문제다. 의지만 있다면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 사례를 보고 어느 정도 예측하고 대책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세계적 척수손상 재활의학 권위자인 핑 비어링 소렌센 덴마크 코펜하겐대학병원 교수가 한국에 왔을 때 이렇게 물었다. “한국 사회는 활기차고 국민이 외식도 많이 하고 모임도 많은데 행복지수는 낮은 편이다. 덴마크는 저녁이면 거리가 비고 삶도 단조로워 보이는데 행복지수는 세계 2위인 이유는 무엇인가?” 소렌센 교수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행복은 먹고 마시고 노는 파티에 좌우되지 않는다. 덴마크에서는 국민 누구든 늙고 병들고 장애가 생길 때 국가 의료시스템이 해결해준다. 그래서 누구나 자신의 미래가 안전하다고 믿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