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 집행위원장이 회의 요구…노조·시민단체는 '재벌 개혁' 시위

입력 2019-01-16 17:45
현장에서

"주주권 행사는 정치논리 아닌 기업가치 높이는데 초점 둬야"

유창재 마켓인사이트부 기자



[ 유창재 기자 ] 16일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가 열린 서울 소공동 더플라자호텔에서는 공공운수노조,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전국민주노총조합총연맹 등 노조와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회사 가치를 훼손한 조양호 회장 해임을 위해 주주권을 행사하라” 등의 내용이 적힌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헤아리기도 힘든 각종 갑질 및 불·편법 행위를 한 조양호 회장 일가는 대한항공이라는 기업을 경영할 경영자로서의 자격을 상실했다”고 주장했다.

한진칼과 대한항공을 정조준해 열린 이날 회의는 기금운용위원 중 한 명인 이찬진 참여연대 집행위원장이 요청해 소집됐다. 이 위원은 지난달 말 “한진그룹에 대해 적극적인 주주권을 행사해야 한다”며 기금운용위에서 이를 논의할 것을 제안했다. 국민 노후자금의 ‘집사(스튜어드)’를 자처하는 국민연금의 첫 주주권 행사가 결국 ‘재벌개혁’을 요구하는 노조와 시민단체의 정치적 주장에 떠밀려 시작된 셈이다.

시장에서는 이에 대해 ‘투자 기업의 장기 가치를 제고한다’는 스튜어드십코드(기관투자가의 수탁자책임원칙)의 순수성이 의심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스튜어드십코드는 자기자본이익률(ROE)을 높여 주가를 올리는 게 최종 목적이 돼야 하는데, 조 회장 일가의 퇴진이 ROE 상승으로 이어진다는 근거가 있느냐는 것이다.

조명현 한국기업지배구조연구원장은 “국민연금은 어디까지나 주주 관점에서 경영진과의 대화를 통해 기업가치를 높이는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며 “철저히 자본시장의 논리에 의해 의사결정이 이뤄져야지 시민단체와 노조의 정치적 주장에 휘둘려선 안 된다”고 말했다. 이원일 제브라투자자문 대표도 “ROE를 높이는 게 목표인 스튜어드십코드는 정치 행위가 아니라 투자의사 결정 과정”이라며 “특정 이해집단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기회로 삼으면 자본시장이 망가진다”고 했다.

시장에서는 정치권과 노조, 시민단체의 정치적 주장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국민연금이 직접 주주권을 행사하는 대신 민간 자산운용사의 주주 제안에 찬반 의결권만 행사하는 게 시장의 요구를 한진그룹에 전달하는 방안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한진칼 지분 10.71%를 확보한 KCGI는 오는 3월 주주총회에서 한진그룹의 지배구조 개선과 비핵심자산 매각 등을 통한 주주 가치 제고를 요구할 계획이다.

하지만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날 회의 후 ‘KCGI와 연대할 수 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국민연금은 외부 세력과의 연대 없이 독자적으로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