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주도성장 우려 쏟아낸 경제원로
니어재단 세미나…'환란 구원투수' 이규성 前 장관 '쓴소리'
이익집단들이 욕구 자제했을 때, 위험요인 쌓인 경제구조 선순환
기득권 지키려는 노동계 설득을
저소득층 지원 강화해야 하지만 '현금 살포'식 퍼주기 복지는 경계
어떤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생산성을 '나침반'으로 삼아야
[ 김일규 기자 ]
“경기 하방 위험이 커질 때는 이념보다 현실을 중시해야 합니다. 지금 같은 고임금 정책, 부동산 보유에 대한 증세 정책이 옳은 선택인지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규성 전 재정경제부 장관은 15일 “경기 하강 국면에서는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자세로 위험관리에 임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동북아시아지역 연구 민간 싱크탱크인 니어(NEAR)재단(이사장 정덕구 전 산업자원부 장관)이 이날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2019년 한국 경제 전망과 위험관리 대책’을 주제로 연 세미나에서다.
이 전 장관은 김대중 정부 초대 재경부 장관(1998년 3월~1999년 5월)으로,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정덕구 이사장은 개회사에서 “정부가 경제정책 궤도 수정을 거부하고 있지만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수정돼야 한다”며 “유연성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이념 위주 정책 버려야”
이 전 장관은 올해 세계경제가 경기순환 국면에서 하방 위험이 커져 성장, 고용, 수출이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대한 경기대응적 정책이 올해 한국 정부의 첫 번째 과제라는 지적이다.
이 전 장관은 과제 달성을 위해 우선 노동계와의 대화를 주문했다. 그는 “경험으로 볼 때 어떤 경제든 내부에 위험요인이 쌓일 때는 이익집단들이 욕구를 자제해야 경제가 선순환구조로 복귀한다”며 “노동계와의 대화가 매우 중요하고 또 시급하다”고 했다.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정부에 각을 세우고 있는 노동계에 대한 설득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이 전 장관은 정부가 이념 위주의 정책을 버려야 한다고도 했다. 특히 소득주도성장을 명목으로 한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부유층에 대한 징벌적 과세 성격의 종합부동산세 인상 등은 경기 하강 국면에서 바람직하지 않은 정책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 전 장관은 저소득층에 대한 복지 강화를 위해 정부 재정이 역할을 해야 한다는 데는 동의했다. 그러나 ‘모자라는 부분’만 국가가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생활의 기본은 근검·절약이고, 그에 더해 저축을 해야 한다”며 “‘스스로의 노력(自助)’을 바탕으로 하고, 모자라는 부분은 국가 지원을 받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현금 살포’식 퍼주기 복지를 경계해야 한다는 뜻이다.
“정부, 시장과 함께 가야”
이 전 장관은 정부가 경제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민간 경제주체들을 불안하게 위축시켜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 경제는 이미 민간 주도로 바뀌었다”며 “민간 경제주체들이 정부 정책에 불안을 느껴 적응이 힘들어지면 ‘적응의 위기’가 온다”고 우려했다. 정부가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등을 밀어붙여 기업들이 사업 계획도 제대로 못 짜고 있는 현실을 지적했다는 분석이다.
이 전 장관은 그러면서 정부에 유연성을 주문했다. 그는 “정부가 특정 이념이나 사상을 경직적으로 고집하면 ‘부적응 현상’이 발생해 경제주체들이 방황한다”며 “경제 불확실성이 클수록 보다 유연하게 탄력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각 경제주체가 변함없이 따라야 할 기준은 ‘생산성’이라는 게 이 전 장관의 조언이다. 그는 “성장잠재력을 확충하려면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며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혁신의 자세가 흐트러지면 경제는 서서히 가라앉게 된다”고 경고했다. 기업에서는 끊임없이 ‘창조적 파괴’가 일어나고, 근로자들은 지식과 기술로 노동생산성을 높여야 함께 성장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 전 장관은 정권이 바뀌더라도 정부는 언제나 생산성을 ‘나침반’으로 제공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정부가 5년마다 나침반을 바꿔 ‘새 술은 새 부대에’라고 외치면 우리 경제에는 ‘축적’이라는 것이 없어지게 된다”며 “시장과 정부는 수레의 두 바퀴로, 정부가 시장과 함께 가려는 태도가 필요한 때”라고 덧붙였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