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과 마주한 양승태 "실무진이 한 일, 알지 못한다"…혐의 전면 부인

입력 2019-01-11 18:08
'사법농단 의혹' 헌정 첫 사법부 수장 檢 출석

대법원 앞서 회견한 양승태, '편견·선입관' 수차례 언급
법조계 "기소 피할 수 없지만 구체적 혐의는 법정다툼 예상"

"직권남용 여부 구속 판가름"
檢, 판사블랙리스트 등 집중 추궁…향후 2~3회 추가 소환 계획

양승태 "결재 서류 등 기억 안난다"


[ 고윤상/안대규/이인혁 기자 ]
헌정 사상 처음인 전직 대법원장에 대한 검찰 조사는 시작부터 시끄러웠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검찰 조사에 앞서 기자회견장으로 택한 대법원 청사 정문엔 11일 이른 아침부터 법원공무원 노조와 보수단체 회원들이 모여 각각 시위를 벌였다.

오전 9시 정각 양 전 대법원장이 탄 차량이 대법원 정문에 도착하자 시위대의 구호 소리는 더욱 커졌다. 차에서 내린 양 전 대법원장은 “양승태를 구속하라”고 외치는 시위대를 잠시 바라본 뒤 기자들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는 다소 굳은 표정으로 “편견과 선입관이 없는 공정한 시각에서 이 사건을 봐달라”고 호소했다. 이날 1차 피의자 조사를 한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의 주요 혐의 한두 개를 집중적으로 캐묻는 전략으로 고강도 수사를 벌였다.

梁, 강경 대응 예고

기자회견은 양 전 대법원장이 자신의 도의적 책임을 인정하면서도 검찰의 사법행정권 수사 내용 자체는 뿌리부터 부정하는 내용이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이 사건과 관련된 여러 법관이 각자의 직분을 수행하면서 법률과 양심에 반하는 일을 하지 않았다고 하고 있고, 나도 이를 믿는다”며 “그분들의 잘못이 나중에라도 밝혀진다면 그 역시 내 책임이므로 내가 안고 가겠다”고 말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편견’이라는 단어를 2차례, ‘선입관’을 3차례 언급했다. 검찰 수사가 편견과 선입관에 따라 진행되고 있다고 에둘러 비판한 것이다. 구체적 혐의에 관한 기자들의 질문에 양 전 대법원장은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편견이나 선입관 없이 이 사건을 봐달라”고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기자회견을 통해 향후 양 전 대법원장의 대응 전략을 엿볼 수 있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기소를 피할 수 없는 만큼 구체적 혐의는 법정에서 싸우되 국민에게는 다른 시각으로 봐달라는 메시지를 던졌다는 얘기다.

檢, 조만간 추가소환

양 전 대법원장은 기자회견 직후 검찰 포토라인을 거치지 않고 검찰 청사에 들어갔다. 수사팀을 이끄는 한동훈 3차장 검사와 잠시 만난 뒤 양 전 대법원장은 서울중앙지방검찰청 15층에 마련된 1522호 조사실로 향했다. 조사는 양 전 대법원장의 사법연수원 30년 후배인 단성한(45·연수원 32기)·박주성(41·32기) 특수1부 부부장검사가 담당했다. 두 사람 모두 최순실 국정농단 특검 출신이다. 양 전 대법원장 측 변호인은 최정숙 변호사(52·23기)로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과 사법연수원 동기다.

검찰이 양 전 대법원장에게 두고 있는 혐의는 40여 개다. 심야조사는 하지 않기로 한 만큼 조만간 한두 차례 더 소환하더라도 조사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이날도 피의자 신문은 오후 8시40분께 끝났다. 이 때문에 검찰은 모든 혐의에 대해 양 전 대법원장에게 묻는 일반적 형식을 취하지 않고, 입증 가능성이 큰 주요 혐의를 집중 조사하는 전략을 취했다. 검찰은 오전부터 단도직입으로 구체적 질문을 쏟아냈다. 질문지만 100쪽이 넘었다. 한 검찰 관계자는 “구속영장 청구를 염두에 두고 일부 혐의 소명에 집중하는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양 전 대법원장 혐의 가운데는 ‘일제 강제 동원 피해자들의 민사소송’ 개입이 가장 크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이 이 재판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고 재판을 전원합의체로 회부해 지연하도록 한 게 직권 남용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다. 반면 양 전 대법원장 측은 대법원장에게 재판 관여 권한 자체가 없으므로 남용의 대상 자체가 없다는 취지로 반박하고 있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이 대법원장 집무실 등에서 일본 기업을 대리한 김앤장 법률사무소 소속 변호사와 세 차례 이상 독대한 배경도 조사했다. 상고법원 도입 등에 비판적인 판사에 대한 인사보복(판사 블랙리스트) 혐의와 관련해서도 이날 비중 있는 조사가 이뤄졌다.

양 전 대법원장은 본인이 결제하거나 서명한 서류에 대해 “기억이 안 난다”거나 “실무진에서 한 일을 알지 못한다”는 식으로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윤상/안대규/이인혁 기자 k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