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 칼럼] 넥슨 매각 말라면 대안이 뭔가

입력 2019-01-10 18:19
수정 2019-01-13 10:33
"게임산업 위기 부른 건 규제 그물
넥슨 매각, '먹튀' 아닌 '출구전략'
'연속 기업가' 배출이 창업에도 得"

안현실 논설·전문위원 경영과학박사


[ 안현실 기자 ] 국내 최대 게임회사인 넥슨의 매각 소식이 전해지자 그 배경이 뭔지, 매각이 되면 누가 인수할지 온갖 추측과 함께 넥슨 매각은 곧 게임산업의 위기라는 우려가 쏟아진다. 일각에서는 넥슨을 매각하면 안 된다는 주장도 나온다. 여기서 떠오르는 의문은, 넥슨이 그대로 있다고 게임산업 전망이 달라질 건가 하는 점이다. 한마디로 회의적이다.

우리나라 게임업계는 “정치권과 정부의 관심이 오히려 부담스럽다”고 말한다. 문화체육관광부·여성가족부·공정거래위원회 등이 꿰찬 게임규제 그물도 모자라 보건복지부까지 ‘질병 분류’ 논란을 기회로 규제자로 가세할 태세다. 넥슨 매각이 게임산업 위기를 부르는 게 아니라 그 반대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불행히도 이미 기득권화된 규제 관성은 바뀔 것 같지 않다.

넥슨이 매각되면 게임 종주국이 중국으로 넘어갈 것이란 우려가 나오지만, 게임시장 주도권이 한국 손을 떠난 지는 오래다. 텐센트 등 중국 기업의 넥슨 인수는 피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중국 시장과 중국 당국의 동향을 떼놓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게 넥슨의 수익구조다. 넥슨은 일본에 상장돼 있다. 글로벌화된 게임시장, 넥슨의 포지셔닝 등을 따져보면 거대시장 중국으로의 매각이 뭐가 문제냐는 얘기가 나올 법하다.

“넥슨 매각 소식으로 게임산업 위기론이 이슈로 부각된 만큼 넥슨 창업자인 김정주 NXC 대표가 매각을 접고 끝까지 기업가정신을 발휘해 달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매각을 고려하기까지 창업자의 고뇌를 생각한다면 그래도 점잖은 참견이다. 안타까운 건 넥슨 매각을 ‘먹튀’로 보는 시각이다.

긴 수사와 재판에 지친 건지, 아니면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김 대표가 밝힌 입장문에는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다. “줄곧 회사의 성장을 위한 최선의 방안은 무엇인지, 나의 역할은 어떠해야 하는지 늘 주변에 묻고 스스로에게 되물으며 고민해 왔다.” 매각 등 ‘경영 판단’과 함께 미래를 위한 새로운 일을 숙고 중이라는 말로 들린다.

국가도 기업도 ‘변환 능력’을 강조하는 시대다. 정보기술(IT) 벤처 1세대인 김 대표는 지난해 자녀에게 경영권을 승계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런 그가 새로운 일에 도전하겠다는 걸 ‘먹튀’로 몰아가면 벤처기업의 ‘출구전략(exit)’을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 식이면 미국 실리콘밸리는 먹튀들로 가득찬 곳이 된다.

정부는 2019년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면서 벤처기업의 출구전략에 해당하는 회수 단계를 보강해 ‘제2 벤처붐’을 조성하겠다고 했다. 인수합병(M&A) 활성화로 매각 성공 사례가 많이 나오게 하는 것만큼 좋은 정책은 없을 것이다. 자신이 창업한 기업을 성공적으로 매각한 후 벤처캐피털리스트, 창업 후원자, 재창업자 등으로 나서는 ‘연속 기업가정신(serial entrepreneurship)’ 확산은 창업 국가로 가는 중요한 진화과정이란 연구도 있다. 우리라고 미국의 ‘페이팔 마피아’ 같은 연속 기업가들을 많이 배출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넥슨 매각이 실제 이뤄지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아 보인다. 10조원을 넘을 것이란 높은 매각가치 때문만은 아니다. 가뜩이나 때를 만난 민주노총이 지난해 게임업계 최초로 설립된 넥슨 노조를 앞세워 ‘힘’을 보여주겠다고 나설지도 모른다. 정치권이 끼어들거나 정부가 제동을 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경제가 강해지려면 국가 안보상 문제가 없는 한 넥슨 같은 기업의 매각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시장이 돼야 한다.” 넥슨 매각 논란을 바라보는 다른 벤처 1세대 기업인의 충고다. 게임산업을 위기로 몰아넣은 규제정책은 요지부동인데 매각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최악이다. 경영 판단을 존중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기업가정신이 발붙이기 어렵다.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