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의혹' 전직 대법원장, 11일 헌정 첫 검찰 조사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
대법원서 입장 발표 강행
법원노조 반발…충돌 예상도
檢, 재판권 침해는 직권남용
양승태 측 "고의성 입증 안돼…범죄혐의 구성요건 불충분"
[ 안대규 기자 ]
재판 거래, 법관 사찰 등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정점에 있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71·사법연수원 2기)이 11일 검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는다. 사법부 수장인 대법원장이 검찰에 소환되는 것은 헌정 사상 처음이다.
검찰 수사도 막바지 단계에 이르면서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 기소,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추가 기소로 다음달 초순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에서 입장 밝히겠다는 양승태
양 전 대법원장은 11일 오전 9시30분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한다. 그는 앞서 구속 기소된 임 전 차장에 대한 검찰 공소장에서 45차례나 ‘공모자’로 이름을 올렸다. △일제 강제 동원 피해자들의 민사소송 △옛 통합진보당 의원 지위확인 소송 △일선 법원의 위헌제청 사건 등에 개입하고 헌법재판소 내부정보 유출과 법관 사찰, 공보관 운영비 불법 편성 등의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법원 노조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검찰 출석에 앞서 이날 오전 9시께 대법원에서 입장을 발표하기로 했다. 구체적인 내용은 알려지지 않있다. 그는 입장 발표 후 서울중앙지검으로 이동해 한동훈 차장검사와 티타임을 갖고 15층 조사실에서 변호인 최정숙 법무법인 로고스 변호사를 대동해 조사를 받는다. 양 전 대법원장 측은 “검찰 조사에서 진술을 거부하지 않고 기억나는 대로 모두 말할 것”이라고 밝혔다. 검찰 측 조사는 단성한 특수1부 부부장 검사(45)가 맡는다. 검찰은 이날 이후 한 번 더 양 전 대법원장을 소환 조사할 예정이다.
직권남용 입증이 관건
양 전 대법원장의 사법처리 여부는 사실상 직권남용 혐의에서 결판이 난다. 검찰은 2010년 모그룹 회장의 폭행 사건 당시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직권남용 적용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2010년 1월 대법원은 경찰의 모그룹 회장 보복폭행 수사를 중단하도록 청탁하고 이를 실행한 혐의(직권남용)로 경찰 간부 2명에 대해 유죄를 확정했다. 법원이 경찰 지휘선상의 위법한 지시도 유죄로 인정한 만큼 법관의 독립적인 재판권을 침해한 양 전 대법원장의 행위 역시 유죄일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반면 양 전 대법원장 측은 범죄 혐의가 수십 가지지만 고의성 입증에 실패해 범죄구성요건을 100% 충족하지 못한다는 입장이다. 고위법관 출신인 한 변호사는 “자갈(범죄 혐의) 1만 개가 모여도 고의성이라는 ‘시멘트’가 부어지지 않으면 하나의 거대한 바위(범죄 성립)가 될 수 없다”고 비유했다. 변호인 측은 법원이 검찰처럼 ‘상명하복’ 조직이 아니고, ‘재판 개입’이 아니라 공정한 재판을 위한 ‘검토 지시’일 뿐이라는 논리도 펼칠 전망이다.
법원이 최근 이명박 전 대통령과 김기춘 전 비서실장, 최경환 자유한국당 의원의 직권남용 혐의에 모두 무죄를 선고한 것도 검찰에 부담이다. 법조계에선 검찰의 무리한 ‘직권남용죄’ 적용이 한국당에 의해 같은 혐의로 고발된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 조국 민정수석, 박형철 반부패비서관 등에 ‘부메랑’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