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부터 '규제 샌드박스' 가동
바이오헬스·핀테크 등 20건 접수
관련법 통과되면 내달 첫 적용
민간업체도 유전자 검사 허용
의료계 등 이해집단간 갈등 첨예
정부 '혁신성장' 시험대 오를 듯
[ 고경봉/서민준 기자 ] 정부의 대표적 혁신성장정책인 ‘규제 샌드박스’가 이달부터 본격 가동된다. 그동안 생활규제, 현장규제 해소에 초점을 맞췄다면 앞으로는 신산업을 통째로 가로막는 ‘암반규제’에 손을 대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상징성과 영향력 등을 감안해 수소충전소, 소비자의뢰 유전자검사(DTC·Direct to Consumer) 등을 다음달 1차로 허용할 계획이다. 막대한 규모의 시장 잠재성을 갖췄음에도 안전 우려 등으로 한국에서만 유독 규제가 심했던 분야다. 정부는 이를 시작으로 연내 바이오헬스, 증강현실(AR)·가상현실(VR), 빅데이터, 핀테크 등에 순차적으로 손을 댈 예정이다. 하지만 벌써부터 시민단체, 의료계 등 반발이 만만치 않은 데다 핵심 분야 중 하나인 카풀(차량 공유) 등은 이해당사자 간 갈등이 첨예해 암반규제 해소가 제대로 이뤄질지 불투명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규제 샌드박스 다음달 첫 적용
규제 샌드박스는 한정된 공간에서 자유롭게 모래놀이를 하는 놀이터 모래밭처럼 새로운 제품 및 서비스에 대해 규제를 일정 기간 또는 일정 지역 내에서 면제해주는 제도다. 이를 통해 신산업 분야의 제품 출시를 앞당기고 글로벌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취지다. 정부는 오는 17일 규제 샌드박스 적용 후보군을 공개할 예정이다. 이날 규제 샌드박스 관련 5개 법 중 정보통신융합법, 산업융합촉진법이 먼저 시행되기 때문이다.
정부는 17일 법이 통과되는 대로 심의위원회를 구성하고 규제 샌드박스 신청이 들어온 제품·서비스를 대상으로 다음달 심의를 개시한다. 첫 적용 대상도 다음달 공개한다.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산업통상자원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이 사전 신청을 받은 결과 약 20건이 접수됐다”고 말했다. 수소충전소와 DTC, 바이오헬스, 로봇 융합형 기계, AR·VR, 빅데이터 등이 접수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혁신정책, 시험대 올랐다
신청된 분야 중 수소충전소가 1호로 유력하다. 안전성이 검증돼 해외에선 도심에서 운영 중이지만 한국에서는 고압가스 안전관리법의 이격거리,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 등에 따라 설치가 사실상 불가능했다. 서울 시내에는 두 곳이 연구 목적으로 설립됐다가 최근 일부 상업적 운영을 겸하고 있다. 다음달 규제 샌드박스가 적용되면 서울에서 양재동과 일원동 등 최대 6곳에 수소충전소가 추가로 설치될 전망이다.
DTC는 현재 병원 외 민간 유전자검사업체에서만 제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에 따라 혈당, 혈압·콜레스테롤, 체질량 지수, 피부노화 등 12가지 검사 항목만 DTC 분석이 가능하다. 암 치매 등 질병과 관련한 유전자검사, 유전자 전체 분석 등을 하려면 병원에 직접 가야 한다. 향후 규제가 완화되면 암 유발 유전자 식별 등 유전자 분석에 기반을 둔 다양한 건강증진 서비스를 제공하는 길이 열리게 된다.
정부 산하 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정부의 규제 해소가 생활 불편을 줄이거나 기업 효율성을 높이는 수준에 그쳤다면 규제 샌드박스는 안전 문제나 이해당사자 간 이익이 얽혀 있는 덩어리 규제를 손대겠다는 의미”라며 “정부의 혁신성장 의지를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홍성일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정책팀장은 “규제 샌드박스는 한시적 규제 면제이기 때문에 근본적인 개혁을 위한 시스템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다”며 “미국이 최근 도입한 규제비용총량제 등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시행한 규제비용총량제는 규제 하나를 신설하면 기존 규제를 두 개 없애는 제도다.
고경봉/서민준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