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완전한 비핵화 전에 북한 핵능력부터 동결해야"
북핵 전문가인 로버트 아인혼 전 미 국무부 군축담당 차관보(현 브루킹스연구소 수석연구원)는 9일(현지시간) “2차 미·북 정상회담에서 (북한 비핵화 논의에) 진짜 진전이 있으려면 실무협상이 제대로 돼야 한다”고 말했다. 아인혼 전 차관보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전격적인 중국 방문으로 미국과 북한의 2차 정상회담이 가시권에 들어왔다는 관측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워싱턴DC 브루킹스연구소 사무실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했다.
아인혼 차관보는 “지금까지 (비핵화 협상에서)북한이 취한 조치는 그리 대단한게 아니다”며 “영변 핵시설 외에 다른 핵시설도 모두 신고해야 한다”고 했다. 미국에 대해선 “(북핵 협상의)최종 목표는 완전한 비핵화지만 그 것은 오랜 시간이 걸리는 단계적 과정”이라며 “중간 단계로 우선 북한의 핵 능력부터 동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정은의 4차 방중(訪中)을 어떻게 보나.
“올해 신년사에서 얘기한대로 ‘미국이 유연하게 나오지 않으면 다른 옵션이 있다’는걸 보여주려는 의도로 보인다. 김정은은 신년사에서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있다’고 했다. 다른 길이 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미국과 손잡는 대신 중국과 결속을 강화하는 옵션을 의미할 수 있다. ‘중국은 북한 편’이란 걸 확실히 하면서 중국으로하여금 제재완화 목소리를 내도록 독려하는 의도도 있어 보인다.”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더 대화할 용의가 있다’와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있다’는 두가지 메시지를 내놨다. 어느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보나.
“김정은은 미국과 대화하고 합의하길 원하지만, (어디까지나)자기 방식대로 하는걸 선호한다. 제재 완화와 군사적 위협 완화를 원하지만 핵무기는 포기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김정은은 정말로 북한의 경제 상황을 개선하고 싶어한다고 본다. (그렇게 하기 위해)제재 완화와 함께 한국, 중국으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고 싶어한다. 그래서 핵무기와 미사일 프로그램을 제한하거나 줄일 준비는 돼 있지만, 핵무기를 포기할 준비는 안돼 있다고 본다.”
◆미국이 그 걸(북한 핵 보유를) 받아들일까.
“트럼프 행정부는 ‘완전한 비핵화를 원한다’고 분명히 밝혀왔다. 부분적인 딜(거래)은 원하지 않는다. 문제는 트럼프 행정부나 차기 행정부가 완전한 비핵화로 가기 위한 중간단계로 북한의 핵 능력을 제한하는 과도기적 합의를 받아들일거냐다.”
◆과도기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보나.
“그렇다. 트럼프 행정부가 완전하고 신속한 비핵화만 고집하다간 아무런 합의도 못할 거다. 완전한 비핵화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봐야 한다. 최종 목표는 완전한 비핵화여야하지만, 그것은 단계적으로 이뤄져야한다는걸 깨달아야 한다. 우선 과도기적 합의를 통해 북한의 핵 능력을 제한해야 한다. ”
◆북한의 핵 능력을 어느 정도로 제한해야 하나.
“핵무기 원료물질 생산을 중단하기로 합의하는게 첫 단계다. 검증가능한 방식으로 그 걸 막는다면 북한이 보유할 수 있는 핵무기(규모)를 제한할 수 있다. 그런 제한은 검증가능해야하며 북한은 핵 원료물질뿐 아니라 모든 핵시설을 신고해야한다.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검증을 위한 사찰을 허용한다면 긍정적인 조치가 될 것이다.”
◆김정은이 핵무기를 신고하면 믿을 수 있다고 보나.
“믿을 순 없다. (그래서)검증 수단이 있어야 한다. 북한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 순 없다.”
◆김정은은 신년사에서 한·미 군사훈련 중단도 요구했다.
“나는 한·미 군사훈련을 일시적으로 중단하기로 한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에 불안해하진 않는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 방식은 잘못됐다. 김정은과 싱가포르 정상회담 직후 즉흥적으로 그렇게 결정해버렸다. 한국과 미리 상의하지도 않고, 심지어 그의 보좌관들도 깜짝 놀랐다. 이건 좋은 방식이 아니다. 하지만 비핵화 협상을 촉진시키기 위해 한·미 군사훈련을 일시적으로 중단하는게 나쁜 아이디어는 아니다. 다만 비핵화에 진전이 없다면 군사훈련을 재개해야 한다. ”
◆북한은 한·미 군사 훈련을 영구적으로 중단하길 원하는거 아닌가.
“한·미 군사동맹이 지속돼야하고 북한과 (비핵화)합의가 있건 없건 굳건하게 유지하는건 중요하다. 우리는 강력한 동맹이 있어야하고, 강력한 동맹이 되려면 훈련이 필요하다. 훈련은 다른 방식으로, 다른 지역에서, 다른 구성 요소들로, 다른 규모로 하면서 여전히 군사적 준비태세를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건 반드시 북한의 실질적인 양보의 대가로 고려돼야 한다.”
◆북한이 ‘파키스탄 모델’을 추구하며 궁극적으로 핵 보유국이 되고 싶어한다는 지적이 있다.
“북한은 이미 핵무기를 갖고 있다. 그들이 원하는건 세계가 북한을 합법적인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파키스탄은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에선 핵 보유국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여겨지는 것이고 인도, 이스라엘도 그렇다. 어떤 나라도 파키스탄이 핵을 가졌다고 제재하거나 비난하지 않는다. 북한도 그걸 원한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미국도, 한국도, 일본도 그걸 받아들일 수 없다.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은 NPT를 위반한게 아니었다. 그들은 NPT에 가입한 적이 없다. 그들은 국제적 의무를 위반할 필요가 없었다. 그들이 핵을 가진건 유감이지만 핵을 얻기위해 전 세계를 속인건 아니었다. 반면 북한은 전 세계를 속일 목적으로 (과거)NPT에 가입했다. 그래서 북한이 핵무기를 갖는건 정당화될 수 없다. 북한이 핵무기를 갖는한 제재를 받을 수 있다. ”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하기 전에는 제재완화를 안할 것으로 보나.
“트럼프 행정부의 입장은 약간 애매하다. 처음엔 ‘완전한 비핵화를 해야만 제재를 해제할 수 있다’고 했지만 지금은 ‘제재완화를 위해선 (비핵화에)커다란 진전이 있어야 한다’는 식으로 얘기한다. 북한 비핵화에 중대한 진전이 있다면 미국도 제재완화를 시작할 걸로 본다. ”
◆뭐가 중대한 진전이 될 수 있나.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북한이 핵물질 생산을 중단하고 IAEA가 그걸 검증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북한이 보유한 전체 핵무기 중)핵무기 10개 가량을 (미국에)넘기는 거다. 그렇게 되면 트럼프 행정부가 약간의 유연성을 발휘하길 바란다. ‘완전한 비핵화 전에는 어떤 제재완화도 없다’고 고집하는건 비현실적이다. ”
◆‘미국의 상응조치를 전제로 영변 핵시설을 폐기할 수 있다’는 북한의 제안은 어떻게 보나.
“쓸모 있는 제스처지만 영변 핵시설을 폐기할 준비가 돼 있다는 제안은 북한이 영변 말고 다른 중요한 핵시설을 갖고 있다는걸 말한다. 북한이 영변 외에 의지할 핵시설이 없다면 그런 제안을 안했을 것이다.”
◆미국이 북한의 다른 핵시설을 파악하고 있지 않나.
“미국은 북한의 다른 핵시설에 대해 일부 정보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북한이 (직접)모든 핵시설을 신고해야 한다. 미국은 북한이 신고한 리스트를 받아서 이미 가지고 있는 정보와 대조한뒤 만약 차이가 있다면 추가 신고를 요구해야 한다. (거꾸로)북한이 미국에게 ‘너희가 가진 (북핵)리스트를 말하면 (그게 맞는지 아닌지)우리가 얘기해주겠다’는 식의 게임을 할 순 없다. 북한이 보다 투명해져야 한다.”
◆트럼프와 김정은이 다시 만날까.
“만날 가능성이 높다. 내가 원하는건 미리 충분한 준비를 했을 때만 만나는 것이다. 싱가포르 정상회담의 문제는 진짜 사전준비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막연한 일반론에만 합의했다. 프로페셔널한 수준의 미팅이 있어야 한다. 현재까지 북한은 그걸 거부하고 있다. 스티븐 비건(대북정책 특별대표)이 북한측 카운터파트(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를 만나고 싶어하지만 북한은 계속 ‘노(no)’라고 말하고 있다. 이건 매우 불운한거다. 트럼프와 김정은의 2차 정상회담은 보다 낮은 레벨에서 진지한 준비를 거친뒤 해야 한다.”
◆그런 준비 없이 2차 정상회담이 열리면 실패할 것으로 보나.
“상황에 따라 다를 것이다. 우리가 아는건 김정은은 잘 준비돼 있을거란 점이다. 문제는 트럼프가 잘 준비돼 있을거냐다. 트럼프 대통령이 시간을 들여 (회담에서)무엇을 이뤄내야할지에 대해 보좌관들의 말을 경청한다면 진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
◆요즘 트럼프 대통령은 국내 정치에 더 관심을 쏟는 것 같다.
“트럼프가 국경장벽에 너무 묶여 있으면 북한에 관심을 기울이기 어렵다. 그건 진짜 문제다.”
◆미국과 북한의 대화가 교착상태에 빠진건 누구 책임이 더 크다고 보나.
“둘 다 책임이 있다. (교착상태에서 빠져나오려면)미국은 좀더 현실적인 접근을 해야하고, 북한은 더 낮은 레벨의 협상에 응해야 한다.”
◆북한은 ‘톱 다운식’ 대화를 선호하고 있다. 좋은 방식이라고 보나.
“트럼프 대통령이 한 일 중 한가지 긍정적인 건 최고위급에서 북한과 협상할 준비를 한다는 점이다. 북한은 기본적으로로 단 한 명의 결정권자가 있는 곳이다. 그런 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맞다. 다만 (2차)정상회담이 진짜 진전을 이루려면 실무협상이 제대로 돼야 한다. 그게 없다는 점이 우려스럽다. ”
◆북핵 문제에서 한·미간 인식 차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 한국은 북한과 경제협력에, 미국은 비핵화에 더 초점을 맞춘다는 우려다.
“한·미간 인식차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한국과 미국 모두 북한 비핵화와 남북관계 개선을 원한다. 인식 차를 줄이려면 미국과 북한의 비핵화 협상에 진전이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한·미 양국 정부에 조언한다면.
“미국은 (협상에서)좀 더 유연해져야 한다. 미국이 상호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북한은 움직이지 않을 것이란 점을 미국이 깨달아야 한다. 한국은 김정은이 비핵화에 좀더 적극적으로 나서도록 촉구해야 한다. 김정은은 ‘이미 많은걸 했다’고 말하지만 지금까지 김정은이 취한 조취는 그리 대단한게 아니다. 지금보다 더 많은 걸 할 준비를 해야 한다. 북한은 영변외에 다른 핵 시설을 신고해야 한다. 모든 핵무기의 숫자와 위치까지 신고하는건 나중에 하더라도 핵 물질을 어디서 생산하는지 신고하면 (비핵화 협상 진전에)도움이 될 것이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