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 계약' 탄생시킨 블록체인 플랫폼
ICO열풍 타고 상용화…느린 속도는 한계
가상화폐(암호화폐) 하면 비트코인을 가장 먼저 떠올리지만 블록체인 기업들이 실생활에서 가장 많이 쓰는 암호화폐는 이더리움이다.
비결은 ‘플랫폼화’다. 결제 기능에 집중한 비트코인과 달리 이더리움은 활용성에 중점을 뒀다. 이더리움 블록체인 위에서 누구나 다양한 서비스를 만들 수 있도록 했다.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거래가 자동 체결되는 ‘스마트 계약’ 기능은 이더리움에 날개를 달았다. 거래 중개자를 없애면서 신뢰도를 높인 블록체인 기반 거래라는 새로운 지평을 연 것이다. 스마트 계약 기능이 추가된 이더리움은 금융·물류·부동산 등 각종 영역에 블록체인을 접목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처럼 범용성 높고 사용자가 많은 이더리움의 강점은 암호화폐 공개(ICO) 열풍을 주도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수많은 개발사들이 이더리움 플랫폼을 토대로 아이디어를 제시했고 ICO를 통해 투자금을 유치했다.
‘ICO의 꽃’으로 자리매김했던 이더리움은 2018년 들어 암호화폐 시장 전반의 하락세와 각국 규제 이슈가 맞물리며 가격이 최고점 대비 90% 이상 내렸다. 대부분 이더리움으로 투자금을 유치한 블록체인 기업들이 최근 인력 구조조정, 사업 중단 등 위기를 겪는 이유다.
◆ '스마트계약' 제시…ICO 후 600배 뛴 가격
이더리움은 러시아 출신 천재 개발자 비탈릭 부테린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부테린은 2011년 ‘비트코인 매거진’ 공동설립, 2012년 최초의 ICO인 ‘마스터코인’ 연구 등 일찌감치 업계에 발을 들였다. 이 과정에서 결제 기능 위주인 비트코인의 한계를 절감, 새로운 개념의 암호화폐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2013년 19세의 부테린이 발간한 ‘차세대 스마트 컨트랙트와 탈중앙화된 어플리케이션 플랫폼’이라는 제목의 이더리움 백서가 그 결과물. 개인 간 위변조 불가능한 계약을 체결하는 스마트 계약 개념을 처음 정립했다. 이듬해 부테린은 대학을 중퇴하고 이더리움 재단을 공동 설립, 크라우드 펀딩 방식의 이더리움 ICO를 진행했다.
이더리움 ICO는 약 3만 비트코인을 모으는 데 성공했다. ICO에 참여한 투자자들은 비트코인 1개를 투자해 약 2000이더리움을 받았다. 당시 비트코인의 시세는 500달러(약 56만원) 선이었으니 이더리움을 약 280원에 산 것이다. 8일 현재 이더리움 가격은 약 17만원 내외. 2014년 처음 이더리움에 투자해 보유했다고 가정하면 4~5년새 약 600배 수익을 낸 셈이다.
◆ '블록체인 2.0' 아이콘 됐지만 수차례 위기
이더리움은 2015년 7월 공식 출시됐다. 가장 성공한 ICO이자 혁신적 프로젝트였던 만큼 이더리움의 성장세는 가팔랐다. 국내에서도 2016년 암호화폐 거래소 코빗에 처음 상장된 것을 기점으로 커뮤니티를 키워나갔다. 이처럼 이더리움은 ‘블록체인 2.0’의 아이콘으로 안착했으나 몇 차례 해킹을 당하며 위기를 겪었다.
해킹은 사소한 스마트 계약 버그(오류)에서 비롯됐다. 2016년 6월 탈중앙화자율조직(DAO) 컨트랙트의 취약점을 파고든 해커들의 공격으로 이더리움 360만개(당시 약 800억원)를 탈취당한 게 대표적이다. 전체 이더리움 개수의 10%에 해당하는 규모였다. 블록체인의 속성상 이미 완료된 거래를 임의로 되돌리거나 수정할 방법은 없었다. 결국 하드포크(체인 분리)까지 해야 했다. 해커들이 이더리움을 탈취하기 이전의 블록체인 데이터를 복사해 새 암호화폐를 만든 것이다. ‘이더리움 클래식’과 ‘이더리움’으로 분리된 배경이다.
정체불명의 서비스 거부(DoS) 공격에도 노출된 적 있다. 신원을 알 수 없는 해커들이 서로 다른 이더리움 계좌에 막대한 거래를 발생시켜 전체 네트워크 지연을 시도한 것이다. 이에 낮은 수수료율을 조정하는 등 추가 하드포크를 단행, 문제를 해결하면서 위기를 넘겼다.
◆ 'ICO 흥망성쇠'와 궤를 같이 한 이더리움
2017년 들어 이더리움 시세는 폭등했다. 이해 1월 8달러에서 6월 400달러까지 뛰었다. ICO를 비롯한 암호화폐 열풍이 시작되면서 대표적인 플랫폼 암호화폐인 이더리움이 최대 수혜주가 된 것이다. ICO 투자를 이더리움으로 해야 하니 수요가 늘었고, 이에 따라 이더리움 가격이 오르면 이더리움으로 투자 받은 블록체인 프로젝트들도 ‘대박’ 나는 구조였다.
지난해 1월 역대 최고점 1400달러(160여만원)를 달성한 이더리움은 특히 국내에선 ‘김치 프리미엄(국내 암호화폐 시세가 해외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현상)’ 탓에 약 240만원까지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국내를 비롯한 각국이 ICO 제재 법안을 발표하고 암호화폐 시장이 침체기로 접어들면서 상황은 반전됐다. 특히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모든 ICO는 증권에 해당한다”는 유권해석을 내놓으면서 ICO 투자 열기는 급격히 식었다. 특별한 규제 준수나 복잡한 절차 없이 대규모 투자금을 유치할 수 있던 ICO의 강점이 상당 부분 희석됐기 때문이다.
이더리움은 최고점을 찍은 후 1년 내내 폭락해 작년 12월에는 80달러(약8만9000원) 선까지 90% 이상 내렸다. 그러면서 글로벌 최대인 임직원 1200명 규모의 블록체인 개발기업 컨센시스가 대규모 감원에 나서는 등 이더리움으로 투자금을 확보했던 업계는 ‘초비상’이 걸렸다.
◆ '옥석 가리기' 시기 거쳐 재도약 노린다
현 시점에서 이더리움의 미래는 비관론이 우세하다. 2017년의 폭등은 ICO 열풍에 힘입은 것으로 재연을 기대하면 안 된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ICO 규제가 엄격해지고 투자자 안목이 높아진 데다 암호화폐 시장 하락세가 겹쳐 ICO 시장은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가 됐다.
이더리움의 느린 속도도 발목을 잡는다. 이더리움보다 빠른 처리속도(TPS)를 표방한 이오스 등이 등장해 이더리움의 아성에 도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암호화폐 산업이 상승 사이클로 돌아선다 해도 이더리움이 종전의 시장지배적 위치를 회복하긴 어렵다고 내다봤다.
하지만 반등의 기회는 남아있다. 암호화폐 장이 최고점이었던 작년 1월도 절대적 시장의 규모는 작았다. 여전히 암호화폐 전체 시가총액이 애플 한 기업의 시총에도 못 미친다. 향후 블록체인 상용화로 시장 자체가 확장되면 그만큼 반등 가능성도 커진다. 또한 이번 위기가 제대로 된 프로젝트의 ‘옥석 가리기’가 돼 건전한 ICO 환경을 만들 것이란 기대감도 있다. 이달 중 예고된 ‘콘스탄티노플 하드포크’가 계획대로 진행되면 이더리움 네트워크의 속도를 높이고 거래 수수료도 낮출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가상화폐 10년] 시리즈는 한경닷컴 기자들이 가상화폐(암호화폐) 10주년을 맞이해 주요 암호화폐들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기획시리즈입니다. <편집자 주>
김산하 한경닷컴 기자 san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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