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엔 환율 25개월만에 최고
中제조업 PMI 19개월만에 최저
미국 애플 등 기술株 침체 우려
유럽은 브렉시트로 불확실성↑
달러·유로 약세…엔화에 주목
[ 고경봉/서민준 기자 ]
‘안전자산’으로 평가되는 엔화가 초강세를 보이고 있다. 세계 경제 규모 1, 2위인 미국과 중국의 경기침체 우려가 동시에 불거지면서 엔화 수요가 단기간에 급증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3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엔 환율은 100엔당 1055원6전으로 마감됐다. 전날보다 29원91전 급등한 것이다. 종가 기준으로 2016년 11월23일 1059원88전 후 25개월 만의 최고가다.
엔화는 지난해 미·중 무역갈등과 신흥국 재정위기 등이 불거질 때도 약세를 나타내는 등 안전자산으로서 위상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작년 9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3선 연임에 성공한 뒤 저금리를 통한 확장적 통화정책을 유지할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린 것이 엔화의 발목을 잡았다. 여기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간간이 일본과의 무역전쟁 가능성을 언급하며 엔화를 짓눌렀다. 원·엔 환율은 지난해 12월 초까지만 해도 100엔당 980원 안팎에 머물렀다.
하지만 연말 연초를 지나면서 안전자산으로서 엔화가 다시 주목받는 양상이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의 경기가 예상보다 빨리 꺾일지 모른다는 우려가 커지면서다. 여기에 미국 연방정부 셧다운(일시적 업무정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관련 불확실성까지 겹치면서 엔화 수요가 급증했다.
이런 가운데 이날엔 전날 미국과 중국에서 돌발 악재가 동시에 터진 데 따른 영향으로 엔화가치가 가파른 오름세를 탔다. 2일 발표된 중국의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49.7로 19개월 만에 최저 수준을 나타냈다. 또 같은 날 미국 뉴욕증시에선 애플의 1분기(지난해 10~12월) 매출이 9분기 만에 하락세로 돌아섰다는 소식이 시장에 충격을 줬다.
민경원 우리은행 연구원은 “PMI 급락에 인민은행 위안화 절하 고시 등이 더해지면서 위안화 약세를 유발했다”며 “이것이 안전자산 선호를 높이면서 미국 국채금리 하락, 엔화가치 급등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문정희 KB증권 이코노미스트는 “공포지수로 통하는 변동성지수(VIX)가 9월 12포인트에서 12월 말 30포인트까지 상승하고 국제 원유 가격이 급락하면서 안전자산 선호도가 커졌다”며 “안전자산 중 달러화는 연방정부 셧다운, 무역분쟁 장기화 등의 영향으로, 또 다른 안전자산인 유로화는 브렉시트 이슈 등으로 투자자들이 꺼리다 보니 엔화가 더욱 주목받는 모양새”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엔화에 대한 관심이 커지겠지만 최근 급등세는 일시적이라 보고 있다. 낮은 유동성 탓에 엔화가치가 ‘오버 슈팅(단기과열)’했다는 분석에서다. 민 연구원은 “뉴욕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이 달러당 108엔 정도에 머무른 데 비해 아시아 외환시장에선 한때 104엔까지 떨어진 것은 일본 증시가 신년 연휴에 휴장한 영향이 컸다”고 말했다.
도루 사사키 JP모간 일본시장분석 총괄은 “유동성 약화에 따른 영향으로 보이는 만큼 글로벌 리스크의 전조로 해석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고경봉/서민준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