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부른 反시장 정책에 경제 '멘붕'
노조에 휘둘려 재정투입·규제 남발
시장 중시하고 기업경쟁력 높여야"
윤창현 < 서울시립대 교수·경영학 >
사람이 많이 탄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한 승객이 탑승하는데 ‘삑’ 하는 경고음이 들린다고 하자. 이 경우 약간 멋쩍더라도 마지막으로 탄 사람이 내리는 것이 상식이다. 최저임금 인상 문제도 그렇다. 편의점 점주들은 카드수수료, 과당경쟁 등으로 힘들게 영업하며 버티고 있는데, 정부는 느닷없이 최저임금을 2년 누적 29%나 인상하는 정책을 강행했다. 그러자 편의점 점주를 비롯한 자영업자들이 감당하기 힘들다고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상황이 이렇다면 최저임금 정책부터 손보는 것이 상식이다. 최저임금 차등적용 조치 등 다양한 노력을 해야 하는데도 나오는 대책이라고는 임금인상분 보조, 편의점 진입 억제 정책, 카드수수료 인하 등이다.
최저임금이라는 추가적 탑승자로 인해 ‘삑’ 소리가 났는데 마지막 탑승자는 그대로 있고 엘리베이터 안쪽에 있던 탑승자들을 끌어내리는 형국이다. 우선, 사기업의 임금인상분을 세금으로 보조하는 것은 재정의 남용행위다. 이럴 거면 인상을 유보하는 것이 맞다. 거리제한을 통한 진입억제 조치는 공정거래 위반 소지가 다분하다.
또 카드수수료가 1조4000억원 규모 가까이 인하되면서 카드업계엔 비상이 걸렸다. 카드회사도 엄연히 주식회사다. 주주들이 투입한 자본에 대해 적정한 이익을 내야 한다. 연간 이익규모가 자기자본 대비 10%는 돼야 한다는 자기자본이익률(ROE) 10% 기준에 훨씬 못 미쳐 ROE가 5%도 안 되는 어려운 상황에서 수수료 수입 감축 조치는 카드업계를 ‘멘붕’에 빠뜨렸다. 힘들어진 카드사들은 구조조정, 인원 감축에다가 각종 고객서비스 축소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정부는 카드사와 카드고객들의 이익을 빼앗아 최저임금의 부작용을 보완하는 셈이다. 무리한 정책을 남발하고 부작용이 발생하면 이를 해결하겠다며 또 다른 반(反)시장적 정책을 쏟아내는 과정에 경제는 멍들어 가고 있다. 최저임금 관련 조치가 벌써 열세 번째 등장했다.
금융업만 해도 그렇다. 금융업의 감축예정 인원이 10만여 명에 달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금융업을 산업으로 보지 않고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이나 도구로만 보는 ‘금융의 탈(脫)산업화’ 정책이 가속화하면서 금융산업 경쟁력은 자꾸만 추락하고 있다.
그래도 무언가 큰 거 한방은 보여주겠지 하는 기대는 완전히 어긋났다. 노조에 포획된 채 끌려가는 모습을 보면 답답하기 그지없다. 문제만 생기면 재정투입에, 규제강화정책을 남발하고 있다. 경제분야에서 ‘관존민비’ ‘사농공상’ ‘가부장의 시대’가 부활한 느낌이다. 이런 가운데 대부분 경제지표가 부정적으로 바뀌고 있고 믿었던 반도체산업마저 추락하고 있다. 탈원전으로 인해 오랜 세월 어렵게 쌓아올린 우리 원전산업의 경쟁력이 무너지는 모습도 보인다. 인적 자본이 허물어지면 해당 산업은 끝이다. 이게 아니다 싶으면 다시 회복시킬 수 있어야 하는데 회복이 아예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정부는 시장을 중시하고 민간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축구팀 감독같이 작전을 잘 세우고 모든 선수들의 역량을 결집시켜 경기에서 승리하려는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정부는 ‘노조’라는 선수만 의식하고 그 선수만 챙기면서 경기를 편파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다른 선수들은 소외시키면서 어떻게 경기를 치를 수 있나.
글로벌 시대에 국내 문제에만 매몰돼서도 안 된다. 세계무대를 보면서 민간의 역량을 총결집해 국가경쟁력을 끌어올려야 한다. ‘중국제조 2025’를 통해 반도체 분야를 포함한 사실상 전 산업에서 세계를 제패하겠다며 무섭게 추격해 오는 중국과의 격차를 어떻게 해서든 유지하면서 세계무대에서 우리 기업들이 승리하도록 뒷받침해야 한다. 국가경쟁력 강화, 저비용·고효율이라는 옛 아젠다들이 새삼스러워지는 요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