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부터 '영어 공용화' 나선 대만
반대 거셌지만 "국가경쟁력 위해 결단"
변화 꺼리는 대중의 '새 정책 반대'
필요성 설득하는 게 정치인 할 일
방향 정한 '과거 때려잡기'는 쉬운 일
리스크 감수 '미래 정치' 펼쳐야"
이학영 논설실장
[ 이학영 기자 ]
대만이 올해부터 영어를 제2공용어로 공식 통용한다. 정부기관 인터넷 사이트, 공공 안내서비스, 공공 데이터, 문화·교육 행정서비스, 전문 기술직 자격시험 등을 올해부터 중국어와 함께 영어로도 제공한다. “국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결단”(라이칭더 국무총리)이다. ‘탈(脫)원전 취소’ 못지않게 놀라운 소식인데, 우리나라에선 무덤덤하다.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멀쩡한 모국어가 있는데 왜…”라는 반발이 거셌다. “대륙으로부터 문화독립을 획책하는 것”이라는 중국의 방해공작이 더해졌다. 장애물을 극복한 건 정부 지도자들이 오로지 ‘미래’에 시선을 맞췄기 때문이다. 내세울 만한 산업과 기술이 변변치 않은 현실을 타개할 돌파구로 ‘전 국민적 영어소통능력’에 눈을 돌렸다. 4차 산업혁명에 따라 전 세계가 한 울타리 안으로 합쳐지면서 ‘글로벌 소통수단’ 영어의 쓰임새가 늘어난 데 주목한 것이다. 네덜란드 스위스 핀란드 싱가포르가 이미 걷고 있는 길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도 몇 해 전부터 영어 공용어화 논의가 제기됐지만, 싹도 못 틔웠다. “영어 못하는 사람들을 더 소외시키고, 영어 배우기에 유리한 부유층만 살판나게 만들 것”이라는 논리에 제압당했다. 실제는 그 반대인데도 말이다. 영어 사용능력이 국가와 개인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를 맞은 만큼, 모든 국민이 어려서부터 영어를 제2공용어로 익힐 수 있게 하자는 게 논의의 단초였다. ‘굴뚝 없는 수출산업’인 국내 관광 활성화를 위해서도 영어 공용어화는 도움이 된다.
무엇보다도 심각한 것은 ‘영어 구사능력에 따른 취업역량 양극화(English divide)’다. 형편이 되는 고소득층은 조기 유학 등의 방법까지 동원해가며 자녀들의 조기 영어교육에 나선 지 오래다. 저소득층은 학교에서 제공하는 교육을 받기 전까지는 제대로 된 영어 학습을 엄두도 내지 못한다. 5년 전 통계지만, 서울 강남의 초등학생 25%가 영어유치원 출신인 데 비해 강북은 이 비율이 1%에 불과하다.
한 중견기업인이 더불어민주당이 야당이던 시절, 몇몇 중진의원들을 만나 이런 사례를 들며 영어 공용어화를 국정 아젠다로 채택할 것을 제안했다.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다는 정당에 더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라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말이 되냐”는 면박이었다. 정보와 인식 부족으로 잘못 생각하는 사람들을 설득해 필요한 정책을 이끌어내는 게 정치인들의 소임인데, 그런 노력은커녕 ‘국민 눈높이’를 핑계 삼아 최소한의 논의조차 막아 버린 것이다.
새 정책과제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고 반대한다”는 이유를 댄다면 시도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투자개방형 병원과 원격의료, 승차공유 등 어지간한 나라에선 이미 보편화된 사업들이 한국에서만 꽉 막혀 있는 이유다. 우리나라가 이만큼이나마 살 수 있게 된 데는 정보기술(IT)을 필두로 3차 산업혁명 붐이 일던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김대중 정부가 초고속인터넷 도입 등 IT 투자를 강력하게 뒷받침했다는 사실이 꼽힌다. 그랬던 나라가 인공지능 등의 4차 산업혁명에서는 후발국가인 중국을 부러워하는 신세가 됐고, 한때 ‘줄기세포 선두주자’ 소리를 들었던 바이오 분야에서도 치고 나가는 일본을 그저 쳐다보고만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지난달 핵심 지지층인 보수진영의 반대를 무릅쓰고 외국인 이민 수용을 확대하는 정책을 발표했다. 일손 부족을 타개하기 위해선 더 이상 순혈주의에 빠져 있을 수 없다고 결단한 것이다. “국민들의 생활과 경제에 플러스가 된다면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밀어붙일 것이다. 새해는 일본의 내일을 열어 가는 해로 만들겠다.”
‘과거’를 때려잡는 정치는 어려울 게 없다. ‘청산’의 방향과 답을 정해 놓고 밀어붙이면 된다. ‘미래지향’은 다르다. 모든 게 불확실한 변수들을 관찰하고, 예측하고, 방향을 잡아 밀어붙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상을 읽는 안목과 통찰력, 결단할 수 있는 용기가 필수적이다. 결과에 대한 책임 부담이 크지만, 국가의 미래를 짊어진 지도자라면 가야 할 길이다. 버트런드 러셀이 “최대의 리스크는 최소한의 리스크도 감수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고 일깨웠던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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