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정부 추진 'AI 대학원' 5년 뒤 문닫는 사태 없으려면

입력 2019-01-02 13:47
수정 2019-01-02 15:11

정부가 새해 인공지능(AI) 인재양성에 발 벗고 나선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AI 분야 석·박사급 인력을 길러내기 위해 대학을 지원하는 통칭 ‘AI 대학원 지원사업’이 그것이다.

AI 대학원을 3곳 선정해 올해부터 10억원씩 지원하고, 내년부터는 연간 20억원씩 총 5년간 90억원을 ‘마중물’로 붓는다는 내용이 골자. 이후 단계평가를 거쳐 성과를 인정받으면 지원기간이 5년 추가돼 AI 대학원으로 지정된 곳은 최대 10년간 국고 190억원을 확보할 수 있다.

AI 대학원에 선정되면 올해 하반기부터 일반대학원 또는 전문대학원에 AI 특화 교육과정을 운영해야 한다. 전임교원 7명 이상, 입학정원 40명 이상 확보와 함께 스스로 문제를 제시한 뒤 해결하는 ‘프로젝트 방식 교육’과 AI 핵심·미래원천 기술을 도전적으로 연구하는 ‘고위험 혁신 연구’를 추진해야 한다. 과기정통부는 산학협력 및 해외 공동연구 병행도 조건으로 제시했다.

대학가는 벌써부터 분주해졌다. 당장 이달 30일까지 사업계획서를 제출해야 한다. AI 대학원 선정 및 지원 방침은 작년 8월 말 과기정통부의 정부 연구개발(R&D) 예산안 주요 투자방향 설명할 당시 언급한 바 있다. 그간 물밑에서 준비해온 대학들이 계획서를 내면 정부가 다음달 말쯤 선정하는 일정이다.

정부가 앞장서 AI 전문인력을 키우겠다는 취지에도 우려가 앞서는 것은 ‘관(官) 주도의 거점형’ 지원사업이 갖는 한계 때문이다. 대학이 예산을 따내려면 정부가 내건 요건과 성과지표를 충족해야 한다. 여기서 ‘엇박자’가 발생할 여지가 크다.

AI는 빠르게 발전하는 분야다. 교과서적 지식 못지않게 실시간으로 생생한 현장 트렌드를 습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과기정통부는 전임교원 7명 확보를 전제조건으로 못 박았다. 하지만 현업 전문가가 전임교원이 되기란 생각처럼 쉽지 않다. 차라리 전임교원은 기초강의를 담당하고 실용강의는 겸임·초빙교수 등 비전임교원을 풍부하게 활용하는 방식이 합리적일 수 있다. 현실적 애로점도 존재한다. 설령 뜻이 있다 해도 5년 단위 학과의 교수로 선뜻 옮기긴 어렵다. 정부 지원이 종료되면 거취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어서다.

실제로 지난해 포스텍(포항공대)은 5년간 약 160억원의 정부 지원금을 받은 엔지니어링전문대학원을 문 닫았다. 학교 측은 “폐원이 아닌 철강대학원과의 통폐합 개념”이라 설명했지만, 결과적으로 정부 지원이 끊기자 ‘엔지니어링 분야 R&D 강화’라는 당초 목표가 흐지부지돼 혈세 낭비란 비판이 쏟아졌다.

본질적으로는 ‘프로젝트 따내기’ 식 지원사업이 반복되는 문제가 크다. 정부가 중점 추진하는 분야와 맞지 않으면 사업에 선정되기 어렵고, 재정지원사업의 평가·선정방식이 주로 과제별 단기적·가시적 정량지표 충족 여부를 따지는 것도 개선해야 할 점이다.

때문에 평가를 통해 특정 분야에 예산을 몰아주는 현행 지원사업의 패러다임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서울 소재 한 사립대 보직교수는 “기업의 역할이 응용이라면 대학의 역할은 기초 분야에 있다. 정부 지원사업 방식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때가 됐다”고 짚었다.

일본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 일본은 일종의 경상비 형태로 과학 예산을 지원한다. AI 대학원처럼 특정 분야와 수행 대학을 지정하기보다는 대학 내부에서 자율 집행하는 기초지원금 방식으로 제공한다. 스승과 제자가 대를 이어 연구한 성과로 노벨상을 수상할 만큼 일본의 호흡이 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부가 뭔가 주도하는 것 못지않게 ‘하면 안 되는 것’만 명확히 정하고 나머지는 풀어주는 게 우선이란 지적도 나왔다. 정보기술(IT) 업계 관계자는 “이런 관 주도 진흥책보다는 각종 법규를 ‘네거티브 규제’로 바꿔 민간의 자유로운 연구·창업 환경 조성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과기정통부가 AI 대학원 몇 곳을 선정한 뒤 깐깐한 목적과 지표를 설정해 거기에만 570억원을 집중 투입하는 방식보다, 최소한의 기준을 통과한 AI 학과들에게 기초지원금 형태로 주고 현장에서 나오는 불필요한 걸림돌을 즉시 제거하는 노력이 훨씬 효율적일 수 있단 얘기다.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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