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코노미] 망설이다 결국 내집마련 실패한 김 과장의 서글픈 2018년

입력 2018-12-31 07:01
정부 초강력 대책에 열·냉탕 오간 집값
되돌아본 2018년 '혼돈의 부동산시장'



올해도 내 집 마련에 실패했다. 서울 목동에서 4억5000만원짜리 전세로 살고 있는 김 과장(37) 얘기다. 그는 지난해 집값 폭등을 장외에서 지켜보면서 분루를 삼켰다. 연초만 해도 결심은 대단했다. “올해는 기필코 내 집을 마련하리라.” 하지만 시장은 그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 조정기를 노렸지만 잠깐 머뭇거리는 사이 집값은 종잡을 수 없이 뛰어버렸다. 결국 등기소엔 가보지도 못하고 1년이 지나가버렸다. 김 과장의 올 한 해 주택구입 분투기를 돌아봤다.

◆1월 - “올해는 꼭 사야지”

김 과장은 집주인의 미소를 볼 때마다 배가 아팠다. 그가 전세로 살고 있는 집의 가격은 2017년 한 해 동안 3억~4억원은 올랐다. 이게 과연 정상인가 싶었다. 그래도 집 없는 박탈감이 더 컸다. ‘무주택자’ 꼬리표를 떼기로 결심한 이유였다. 마침 매일 보던 신문에서 유명한 증권사 애널리스트 인터뷰를 읽었다. 올해 서울 집값이 12% 오른다고 했다. 더 늦기 전에 서둘러야겠다고 결심했다.


최악 한파에도 가열된 시장은 식지 않았다. 연초부터 ‘강남3구(강남·서초·송파)’ 집값이 들썩였다. 송파구는 한국감정원 조사 이래 처음으로 주간 매매가격 상승률이 1%를 넘겼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 다음주엔 1.39%를 기록하면서 역대 최고 상승률을 한 주만에 경신했다. 김 과장은 같은 부서 이 대리를 떠올렸다. 지난해 여름 결혼한 이 대리는 처가를 잘 만나 결혼과 함께 잠실에 소형 아파트를 매입했다. 김 과장은 그때 “요즘 같은 급등기에 잘못 사면 꼭지에 물린다”고 조언했다. 그러나 집값은 그의 조언과 달리 급등했다. 이 대리가 9억원에 산 집의 매매가격은 13억원을 돌파하고 있었다. 빗나간 예측으로 민망하기도 하고 엄청 부럽기도 했다. “짜식, 새파란 놈이 겨우 집 한 채 샀다고 고개 빳빳이 들고 다니고…”

하지만 선뜻 추격매수에 동참할 수 없었다. 지금 집을 샀다간 정말로 물리겠구나 싶었다. 김 과장은 한두 달만 더 지켜보기로 했다.


◆2월 - “집값 꺾이는 거 아냐?”

집주인이 거리 시위에 나가기 시작했다. 정부에서 재건축 아파트 안전진단 기준을 강화해서다. 구조안전성 평가 가중치를 상향하고 주거환경평가에 대한 가중치는 낮추는 게 골자였다. 얼마나 불편한지를 떠나서 집이 아직도 꽤 단단하면 재건축을 막겠단 이야기였다. 정작 주차를 비롯해 불편을 겪는 건 전세로 사는 김 과장인데 난리는 집주인들이었다. “차라리 재건축 연한이 40년으로 환원돼버렸으면” 그는 이런 생각도 해봤다.

이따금 들르던 몇몇 중개업소에선 매일같이 문자가 쇄도했다. 집 살 생각 없느냐는 것이다. 호가는 떨어지고 있었다. 목동 소형 면적대 아파트값도 드디어 3000만원씩 내려앉기 시작했다. 통계에서도 집값 상승세가 슬슬 멈추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집값 상승률이 2월 들어선 0.30%→0.29%→0.22%→0.21% 등으로 둔화되기 시작했다. 역시 예상대로다. 어디에선 입주민들이나 중개업소들의 집값 담합이 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당장 강남 입성은 무리고, 조금만 더 떨어지면 ‘마·용·성(마포·용산·성동)’에서 나오는 급매물을 공략해보기로 마음먹었다.


◆4월 - “상승률 둔화 속 매물 실종”

주간 상승률 0.06%. 드디어 불이 꺼졌다. 김 과장은 토요일마다 마포구와 성동구 등지의 중개업소를 돌았지만 이번엔 매물이 자취를 감췄다.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소득세 중과 때문이었다. 지난해 ‘8·2부동산 대책’에서 예고됐던 내용이다. 집이 3채 있으면 세금만 최고 62%다. 한 중개업소 사장은 김 과장을 자리에 앉혀놓고 “앞으로 8년 동안 여기서 집 사긴 힘들 것”이라고 단단히 일러줬다. 집주인들이 우르르 임대사업자 등록에 몰렸기 때문이다. 매물이 귀하다 보니 계약하려면 일단 계약금부터 총알송금해야 한다는 곳도 있었다. 연초엔 월평균 9000명 안팎이던 임대사업자 등록자수는 3월 한 달 동안만 3만5000명을 넘겼다. 국토교통부 통계를 보니 거래량은 정반대로 움직였다. 거래일 기준으로 3월 9404건이던 아파트 매매거래는 4월 4479건으로 반토막났다.

◆7·8월 - “서울은 불바다”

포기를 모르는 김 과장. 결국엔 집을 구했다. 마포의 한 20년차 아파트 소형 면적대를 6억원 후반대에 계약했다. 살던 곳과 비교하면 딱히 환경이 더 좋은 것도 아니었지만 요즘 같은 시절에 이 가격에 마포 집 한 채를 구하는 건 횡재나 다름없다고 아내를 잘 설득했다. 잔금은 연말까지 내기로 했다.

한낮 기온이 39도까지 오르면서 역사상 가장 무더운 여름 한복판을 지나고 있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중대발표를 했다. 여의도와 용산을 통합 개발하겠다는 내용이다. 발표 한 주 만에 1억~2억원씩 오르는 아파트가 숱하게 나왔다. 집값 통계를 나타내는 지도에선 서울 전역이 불바다처럼 붉게 물들었다. “여보 내가 뭐랬어, 집 한 채는 있어야 한다니까.” 김 과장은 아내에게 우쭐댔다.


외곽지역도 날뛰었다. 은평구가 서울 상승률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신분당선 연장선 논의 때문이라고 했다. “아이고, 거기가…” 김 과장은 기가 찼지만 강북 지역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평소 즐겨 읽던 ‘집코노미’를 보니 7~8월 노원·도봉·강북구에서만 150개 아파트 단지가 역대 최고가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아동 신축 아파트 전용면적 84㎡가 7억원을 넘겼다는 소식을 듣곤 불길해지기도 했다. “혹시 매도자가 해약하자고 나오는 건 아닐까.”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김 과장은 어느 날 매도인의 전화를 받았다. 계약을 물리자는 것이다. 법대로 하자고 했더니 법이 그렇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계약금을 돌려받고 또 그 계약금만큼의 위약금을 받았다. 수천만원의 목돈의 생겼지만 김 과장은 기쁘지 않았다. 계약했던 집은 1억원이나 올라있었다.


◆9월 - 정부, 부동산과의 전쟁 선포

아파트값 최고가 행진은 수도권도 만만치 않았다. 불과 닷새 만에 400개 아파트가 과거 고점을 뚫었다. 분당·용인·평촌 등 옛 ‘버블세븐’ 지역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던 중 정부가 다시 부동산 대책을 꺼냈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11번째 부동산 대책이었다. 유주택자의 규제지역 주택담보대출(주택구입목적일 경우)이 막히고 다주택자의 종합부동산세율은 종전 최고 2.0%에서 3.2%로 뛰었다. 임대사업자들의 경우 대책 발표일 이후 새로 취득한 주택은 임대등록을 하더라도 양도세 중과 배제와 종부세 합산 배제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됐다. 1년 전 8·2 대책처럼 초강력 대책이라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일단은 집값이 떨어지는 모양새였다. 주간 아파트 매매가격 상승률은 0.26%에서 0.10%로 축소됐다. “계약 파기의 위안으로 삼으리”. 김 과장은 내심 기뻤다. 추석 직전엔 3기 신도시 계획까지 나왔다.

◆10월 - 약세론자들의 등장

강력한 대책의 약효는 바로 나타났다. 어디선가 집값 약세론자들이 슬슬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유튜브 같은 곳에선 폭락론자들의 터무니없는 ‘저주’가 흔했지만 이번엔 달랐다. 전망을 바꾼 전문가들도 있었다. 지난 5년 동안 집값을 척척 맞혔던 한 유명 애널리스트 역시 약세론을 들고 나왔다. 논리적 근거는 탄탄했다. 그는 공시가격 6억원(수도권 기준) 초과 여부와 국민주택규모(전용 85㎡) 초과 여부로 주택시장을 4등분했다. 이 가운데 공시가격 6억원 이하와 전용 85㎡ 이하 주택에 투자수요가 집중되고 ‘똘똘한 한 채’를 제외한 나머지 고가주택에 대해선 수요가 급감할 것이란 전망을 폈다. ‘9·13 부동산 대책’ 이후 공시가격 6억원을 넘는 주택은 의무임대기간을 채운 뒤 양도하더라도 장기보유특별공제(8년 50%·10년 70%) 혜택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김 과장은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시장에선 신중한 현상유지 전망과 조정론이 뒤엉켰다. 강세 일변도이던 몇 달 전과는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그리고 그가 다시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바로 일본형 집값 대폭락론의 원조인 선대인 선대인경제연구소장. 더 떨어질 때가 됐긴 됐나 싶었다. 혹시나 싶어 찾아봤지만 여름에 계약이 파기된 집의 시세는 거의 변하지 않았다.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아예 거래가 끊겨서다.

김 과장은 청약으로 요행을 노려보기로 했다. 정부 규제로 분양가격이 주변 시세보다 수억원 저렴한 사례가 많았다. “살 때부터 먹고 들어가는 전략을 펴리라”. 그러나 분양 성수기인 가을이었지만 모델하우스를 여는 곳은 거의 없었다. 9~10월 서울에서 분양이 예정됐던 단지는 모두 8곳, 일반분양 물량은 2374가구였다. 그러나 10월 말까지 한 곳도 분양을 시작하지 않았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와 정비사업 조합 간의 분양가 힘겨루기 때문이라는 소식이 들렸다. ‘로또 아파트’는 당첨으로 수억원대 시세차익을 챙길 수 있어서가 아니라 당첨 확률이 로또만큼 희박해서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이라고 김 과장은 새로운 정의를 내렸다.


◆12월 - 신도시의 추억

정부가 공급 카드로 3기 신도시를 꺼냈다. 과천과 하남, 남양주, 인천에 자족형 신도시를 짓는다는 거창한 계획이 발표됐다. 이제서야 첫삽을 뜬 2기 신도시 검단신도시에서 분양이 진행될 때였다. 9년 전 운정신도시에 분양을 받아 집을 장만했다던 같은 부서 강 부장의 낯빛은 사색이 됐다. 날마다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노래를 부르던 그였다. 서울에도 다양한 공급계획이 나왔지만 임대주택 비중이 높았다.

-0.06%. -0.05%. -0.08%. -0.08%. 12월 들어 발표된 서울 집값 변동률이다. 7주 연속 마이너스는 2014년 이후 처음이었다. 규제와 공급대책이 섞이면서 집값은 서서히 내리막을 탔다. 그리고 집주인은 김 과장을 찾았다. 전세계약을 연장할 것인지 물었다. 만기가 3개월 정도 남아 있어서다. 전셋값은 생각보다 오르지 않았다. 실탄을 확보해두기 위해 월세로 전환할 수 있는지 물었더니 집주인은 딱 잘라 거절했다. 결국 김 과장은 전세계약을 연장하기로 했다.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떨어지면 그땐 정말로 집을 사야겠다고 다시 마음 먹는 김 과장의 2018년이 저물고 있다.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