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맥건 WSJ 칼럼니스트·전 백악관 스피치라이터
값비싼 비용 부른 정부 개입
증세를 '선의'로 포장한 엘리트에
정면 반기 든 佛 '노란조끼' 시위
1960년대 美 '빈곤퇴치 전쟁'도
거액 쓰고 빈곤의 대물림 초래
녹색정책이 부른 양극화
캘리포니아 온실가스 감축 정책
집세·교통비 등 서민부담만 키워
"자본주의가 문제"라는 사람들
실패한 개입주의엔 왜 입 다무나
[ 정연일 기자 ]
지구촌 곳곳에서 자본주의가 실존적 위기에 직면했다는 주장이 다시 머리를 들고 있다.
지난 미국 중간선거에서 최연소로 하원의원에 당선된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즈는 ‘서부 개척시대 정신을 이어받은 고삐 풀린 초(超)자본주의 시대의 종언’을 선언했다.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머지않아 억만장자들이 대를 이어 세계를 지배하는 ‘세습 자본주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영국 성공회의 캔터베리 대주교는 최근 퍼지고 있는 ‘긱이코노미(Gig Economy)’를 고대 악령의 화신으로 규정했다.
물론 자유경쟁시장이 완벽하다고만은 할 수 없다.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도 비용을 수반한다. 미국 GM이 공장을 멕시코로 옮겨감에 따라 일자리를 잃게 된 미국 노동자에게 “큰 그림을 보라”고 말하면 즉각 공분을 살 것이다.
그러나 최근 프랑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시위를 들여다보면 ‘선의(善意)’로 포장된 정부의 개입이 실은 자유시장보다 불필요한 비용을 더 많이 초래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우리는 프랑스 사례가 그동안 과도한 증세를 ‘선의’로 포장했던 정치 엘리트 집단에 반기를 든 시민들의 집단행동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프랑스 ‘노란 조끼’ 시위는 표면적으로는 유류세 인상을 반대하며 시작됐다. 하지만 정부가 유류세 인상 방안을 발표하기 전부터 프랑스 서민들은 자국의 높은 세율에 큰 불만을 갖고 있었다. 프랑스인들에게 부과된 다량의 세금은 유럽 내에서도 악명이 높다. 프랑스에서 자동차 기름 1갤런을 사기 위해서는 6달러 정도가 드는데 이 중 4달러가 세금이다.
미국 노동통계국에 따르면 미국인들은 자동차 연료비로 1년에 대략 2000달러를 쓴다. 만약 미국이 프랑스와 같은 수준의 세금 체계를 갖게 된다면 이 금액은 금세 4000달러를 넘을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프랑스의 온난화가스 배출량이 세계 배출량의 1%도 되지 않을 정도로 미미하다는 것이다. 프랑스가 아무리 유류세를 올려 탄소가스 배출을 막아본다 한들 지구적 차원에서는 큰 효용이 없다.
정치 엘리트들의 그릇된 선의가 빚어낸 실정에 반감을 품는 것은 비단 프랑스인들뿐만이 아니다. 바다 건너 영국에서는 유럽연합(EU)이라는 초국적 정부기관에 대한 반감에서 시작됐던 브렉시트 운동이 이제 헛발질을 거듭하는 자국 정치 리더들에 대한 불신임과 규탄으로 번져 나가고 있다.
미국에서 선의로 시작된 정책이 재앙을 불러온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1960년대에 시행된 ‘빈곤 퇴치 전쟁’이었다. 당시 대통령이던 린든 존슨이 가난한 서민들의 삶이 좀 더 나아지기를 바란다는 선한 의도에서 시작한 이 정부 프로그램에는 어마어마한 액수의 정부 예산이 투입됐다. 하지만 그 결과 흑인이 주를 이루던 미국 저소득층 상당수는 복지에 중독돼 빈곤의 대물림이 이어졌고, 미국 주요 도시 중심가는 빠르게 슬럼가로 변했다.
오늘날 ‘선의의 역설’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분야는 녹색정책이다. 캘리포니아에서 이 문제가 제일 심각하다. 캘리포니아 채프먼대의 조엘 코킨 교수와 마셜 토플랜스키 교수는 최근 기고문에서 “캘리포니아는 소수의 대부호와 쪼그라드는 중산층,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빈곤층의 피라미드 계층 구조가 고착화된 봉건사회로 나아가고 있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캘리포니아는 미국에서 가장 높은 빈곤율을 보이고 있으며 양극화 지표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캘리포니아가 이 지경까지 오게 된 이면에는 녹색정책이 자리잡고 있다. 캘리포니아주(州) 정부는 현실 상황이나 경제학적 이론은 고려하지 않은 채 그저 ‘그것이 옳다’는 맹목적 믿음으로 녹색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코킨 교수는 이런 무모한 정책들이 할리우드나 실리콘밸리에 사는 상류층의 지위를 공고하게 하지만 서민들로부터는 계층 간 사다리를 빼앗아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직까지 캘리포니아 주민들은 프랑스에서처럼 대규모 시위를 벌이지 않고 있지만 이들도 나름의 방식으로 저항하고 있다. 올해 초에는 사회운동가 200명이 녹색정책의 주축인 캘리포니아 대기정화위원회(CARB)를 대상으로 공동 소송을 냈다. 이들은 캘리포니아가 표방하는 ‘깨끗하고 친(親)환경적인 경제’가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 꼬집었다. 캘리포니아의 온실가스 감축 정책이 의도한 효과는 나타나지 않는 데 반해 집세, 대중교통비, 전기세와 같은 서민 부담만 키우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그 비용은 고스란히 흑인이나 히스패닉 같은 저소득층에게 전가된다.
이들은 또 녹색정책이 의도적으로 서민들을 괴롭히고 있다고 지적한다. 정치가들은 캘리포니아가 녹색정책을 잘 실천하고 있다는 증거로 주(州) 내부의 대중교통 이용률을 높이고 싶어 한다. 캘리포니아의 ‘봉건 영주들’은 자신들이 정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인 로스앤젤레스와 샌프란시스코 일대 교통 체증을 의도적으로 더 악화시키고 있다.
프랑스 시민들이 분노하는 현상이 이미 미국에서도 퍼지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한때 잘나가던 공업도시가 값싼 중국산 수입품 때문에 쇠락하게 되면 많은 이들이 자본주의가 문제라고 한목소리를 내곤 한다.
하지만 과도하게 높은 세금이나 녹색정책 아젠다와 같이 실패한 정부 정책이 서민들의 삶을 짓누를 때 ‘개입주의’와 ‘선의의 역설’을 비판하는 이들은 왜 좀처럼 보이지 않을까?
원제=The Crisis of Good Intention
정리=정연일 기자 ne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