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임기자 칼럼] K팝의 무한질주가 말하는 것들

입력 2018-12-26 17:34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 서화동 기자 ]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미국 빌보드 메인 앨범 차트인 ‘빌보드 200’에 17주 연속 이름을 올렸다. 25일(현지시간) 빌보드가 발표한 최신 차트에서 BTS의 리패키지 앨범 ‘러브 유어셀프 결(結) 앤서’는 전주보다 8계단 오른 74위를 기록했다. 이른바 ‘차트 역주행’이다. 이 앨범은 ‘월드 앨범’ 1위, ‘인디펜던트 앨범’ 2위, ‘톱 앨범 세일즈’ 49위도 차지했다. ‘러브 유어셀프’ 시리즈의 ‘전(轉) 티어’와 ‘승(承) 허’도 이들 차트의 상위권을 차지했다.

세계적인 현상이 된 K팝

BTS만이 아니다. ‘꿈의 차트’로 여겼던 빌보드 차트에서 K팝 가수의 음반과 노래를 발견하는 건 더 이상 신기한 일이 아니다. 이날만 해도 ‘아티스트 100’에서 BTS는 2위, 엑소가 81위에 올랐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가장 활동적인 아티스트를 선정하는 ‘소셜 50’은 K팝의 놀이터다. 1위 BTS, 3위 엑소를 비롯해 갓세븐, 세븐틴, 블랙핑크, 워너원 등 K팝 그룹 6팀이 톱10에 들었다. 샤이니, NCT127, 몬스타엑스, 트와이스, NCT 등 총 11팀이 차트에 올랐다. 지난달 28일 업데이트된 ‘소셜 50’에선 무려 18팀이 차트를 점령했다.

“2018년은 K팝의 해였다.” 미국 CNN은 올해 가장 큰 화제가 된 문화계 뉴스 중 하나로 K팝을 꼽으면서 이렇게 평가했다. BTS가 K팝 그룹 최초로 ‘빌보드 200’의 1위를 두 차례나 차지했고, 걸그룹 블랙핑크는 2009년 이후 K팝 걸그룹으로는 처음으로 ‘빌보드 핫 100’ 차트에 진입했다고 소개했다. 지난 4월 주간지 타임이 선정하는 100인의 인기 인물에 BTS가 포함된 것은 K팝이 세계적인 현상임을 확인시켜 줬다고 CNN은 전했다.

과연 그랬다. 올해 ‘빌보드 200’에서 엑소는 23위, 블랙핑크는 40위, NCT 127은 86위에 올라 자체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블랙핑크 멤버 중 첫 솔로 주자로 나선 제니는 빌보드 ‘월드 디지털 송 세일즈 차트’ 1위에 이름을 올리며 주목받았다.

콘서트 시장도 뜨거웠다. BTS를 비롯한 K팝 그룹의 월드투어가 1년 내내 이어졌다. 갓세븐은 지난 7월 로스앤젤레스에서 연 한 차례 공연으로 9600여 명의 관객을 모아 빌보드가 발표한 ‘핫 투어 톱10’ 9위에 올랐다. 아시아권 가수로는 유일했다. 미국의 음악 스트리밍 플랫폼 ‘판도라’는 ‘2019년 주목해야 할 아티스트’로 내로라하는 스타들과 함께 그룹 몬스타엑스를 선정했다. 몬스타엑스는 매년 말 열리는 ‘징글볼’ 투어에 K팝 그룹 최초로 초청돼 6개 도시에서 12만 관객의 열광적인 환호를 이끌어냈다. 새해 벽두부터 오마이걸, MXM, 레드벨벳 등의 미국·캐나다 투어도 이어진다.

무한경쟁이 키운 힘

K팝이 변방의 음악에서 주류 음악으로 부상한 것은 무한경쟁 속에서 키운 경쟁력 덕분이다. 한국 가요계는 경쟁이 치열하기로 유명하다. 몇 년씩 혹독한 연습생 시절을 거치며 노래와 춤으로 무장한 아이돌 그룹이 1년에만 수십 팀씩 데뷔한다. 기존 그룹은 몇 개월 단위로 신곡과 새로운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컴백한다. 실력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는 구조다. 노래와 춤은 물론 작사·작곡, 연기, 예능감각, 외국어 실력까지 갖춘 멤버들이 줄을 잇는 이유다.

이들은 세계 음악의 트렌드를 누구보다 빨리 소화하고 신제품을 만들어 낸다. 세계적인 아티스트들과의 협업, 팬과의 소통에도 익숙하다. 이렇게 치열한 경쟁을 통해 성장한 그룹들이 K팝 무한질주의 비결이다. 온실에서 핀 꽃은 비바람을 이길 수 없다. 보호와 규제 속에서 경쟁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개인도 기업도 경제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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