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산업안전보건법, 실효성 있게 개정해야

입력 2018-12-24 18:18
"도급제도 아니라 안전관리가 문제
현장 모른 채 기업부담 늘려선 안돼"

정진우 < 서울과학기술대 교수·안전공학 >


태안화력발전소 김용균 씨 사망사고를 계기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오는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개정안을 처리하겠다는 구체적 일정까지 나와 있다. 세간에는 다른 것도 아니고 법 개정을, 그것도 전부개정안을 졸속으로 추진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많다. 국회에 제출된 정부개정안은 기업에 많은 부담만 지울 뿐 현장에서 작동하기 어려운 내용이 적지 않다. 하청근로자의 산업재해를 실질적으로 예방하기에도 부족하다는 평가다.

먼저, 정부개정안은 법의 기초가 돼야 할 헌법상의 원칙에 터를 잡고 있지 않다. 명확성 원칙, 책임 원칙, 과잉금지 원칙 등을 위배하는 내용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식 자의적 행정을 하겠다는 초법적 발상도 보인다.

둘째, 법리와 실효성 측면에서 많은 문제점이 있어 법의 규범력을 무너뜨릴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준수할 수 없는 법이라는 인식이 팽배해질 것으로 우려된다. 원청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행동지침을 제시하지 못하고, 원청이 지배 관리할 수 없는 것까지 하라는 식이다. 개정안으로는 준법의식이 높은 기업조차도 법을 준수하지 못해 범법자가 양산될 것이라는 게 학계의 중론이다.

셋째, ‘위험의 외주화’를 바라보는 시각에도 문제가 있다. 도급 전체를 나쁜 것으로 보는 시각이 깔려 있다. 도급을 금지한다는 것은 대기업에 중소기업의 영역까지 잠식하라고 얘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도급을 금지한다고 해서 위험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하청작업이 원청작업으로 이전될 뿐이다. 도급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도급작업에 대한 안전관리의 불량이 문제의 핵심이다.

넷째, 사망사고 발생 사업장에 대해 사업장 전체에 작업중지명령을 내리는 것과 관련해 법적 근거를 마련하겠다고 한다. 이는 현재 법적 근거 없이 남용되고 있는 자의적 권한행사에 날개를 달아주는 격이다. 사망사고가 났다고 해서 급박한 위험이 없는 부분에 대해서까지 작업중지를 명령하겠다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다. 그리고 작업중지명령 해제를 해당 작업중지 이유와 무관하게 사업장 산재예방대책 수립을 요건으로 하게 되면, 사업장은 명령해제를 위해 재해원인조사와 재발방지대책 수립을 단기간에 졸속으로 행할 것이고 이는 오히려 부실한 안전관리를 조장할 가능성이 크다.

정부의 눈에는 산업안전에 관한 국제기준과 실효성은 관심 대상이 아닌 것 같다. 현장과의 소통, 실효성을 강조하는 현 정부에서 이런 문제점을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최근의 많은 하청근로자 사망사고 역시 법 규정이 없어서 발생한 것은 아니다. 고용노동부가 현행법만 제대로 집행했더라면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던 사고들이다. 하청근로자 산재예방을 위한 법 규정이 없다고 입법불비(立法不備) 타령을 하는 것은 현실을 호도하는 인식이자 법 집행의 부실을 덮으려는 무책임한 태도다.

정부개정안의 문제가 현실화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국회에서 개정안을 심도 있게 검토해 바로잡아야 한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 ‘통법부(通法府)’란 오명을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국회의 면밀한 심사가 필요하다. 하청근로자의 산업재해를 실질적으로 막을 수 있는 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 보여주기식 개정은 금물이다. 이번 기회에 국회가 실질적 법치주의가 무엇인지를 입법으로 보여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