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수 모금 아니냐' 비판
'지로형태로 모금' 한국 유일
"보이스피싱과 차이가 뭐냐
그동안 속은 게 괘씸" 항의 글
[ 조아란 기자 ]
작년까지 적십자회비를 꼬박꼬박 냈던 이모씨(61)는 올해부터 이를 중단했다. 빠듯한 생활비를 쪼개 돈을 냈는데 회비 납부가 의무가 아니라 선택이란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이씨는 “연말마다 지로 고지서가 오길래 나라에서 부과하는 공과금인 줄 알았다”며 “그동안 속은 게 괘씸해 앞으로는 돈을 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적십자사가 연말연시 집집마다 발송하는 지로 형식의 후원금 고지서를 놓고 ‘꼼수 모금’이 아니냐는 비판이 일고 있다. 적십자사는 집중 모금기간으로 정한 12월과 1월에 △개인 1만원 △개인사업자 3만원 △법인 5만원 등으로 일괄 적용해 각 가정과 기업에 지로 통지서를 보낸다. 통지서에는 가구주 이름, 주소, 납부 금액, 기간 등이 구체적으로 적혀 있다.
적십자사가 이렇게 통지서를 보낼 수 있는 것은 현행법에 따라 적십자사가 지방자치단체에서 개인정보를 수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적십자사조직법 제8조에 따르면 적십자사는 지자체에 자료 제공을 요청할 수 있고, 지자체는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자료를 제공해야 한다.
적십자사가 지로 통지서를 통해 모금하는 까닭에 후원을 하고도 “낚였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속출하고 있다. 24일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는 “이런 식의 기부금 모금이 보이스피싱과 무슨 차이가 있느냐”는 등 항의 글이 수십 개 올라왔다. 한 게시글 작성자는 “모르는 분들은 세금인 줄 알고 내는 걸로 안다”며 “세금을 가장해 기부금을 더 모으려는 꼼수 아니냐”고 했다. 적십자사에 따르면 지난해 지로 통지서를 통한 모금액은 472억2484만원이다. 지로 형태로 기부금을 모집하는 것은 세계 200여 개 국제적십자사 회원국 가운데 한국이 유일하다.
적십자사는 매년 받는 정부 보조금도 적지 않다. 대한적십자사조직법에 따르면 대통령이 적십자사 명예총재를, 국무총리가 명예부총재를 맡고 매년 230억원가량의 국고보조금을 지원한다.
적십자사는 “지로 규격은 금융결제원이 관리하기 때문에 임의로 디자인 등을 바꿀 수 없다”며 “후원금 고지서를 받고 싶지 않으면 ‘영구 발송 제외’를 신청할 수 있다”고 말했다.
조아란 기자 arc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