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글로벌 기업들이 한국 특허시장에 쏟아붓는 예산이 줄고 있는 추세다.” 오세중 대한변리사회 회장이 해외 기업들이 한국에서 특허를 출원하지 않는 ‘코리아 패싱’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전한 말이다. 오 회장은 한경과의 인터뷰(12월24일자 A18면)에서 “국내 대기업 중에도 해외에서만 특허를 내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정부가 기회 있을 때마다 ‘지식강국’을 외치고 있지만 현실은 그 반대로 가고 있다는 얘기다.
한국이 글로벌 특허 출원시장에서 매력을 잃고 있음은 특허청에 접수된 특허건수에서도 나타난다. 2015년 21만3694건을 정점으로 2016년 20만8830건, 2017년 20만4775건 등으로 줄어들고 있다. 올해는 20만 건을 밑돌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변리사들에게 돈이 된다는 대기업 출원건수 하락세는 훨씬 더 가파른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글로벌 기업까지 한국에 배정했던 출원예산을 중국 등 다른 아시아권 국가로 돌리면서 국내 특허시장이 더욱 쪼그라들고 있다.
국내 특허 출원시장이 외면받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지식재산권이 중요하다는 인식 자체가 부족한 때문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특허 소송을 해 봐야 법원에서 특허침해 사실을 인정받기 어려운 데다, 침해를 인정받더라도 손해배상액 자체가 적은 실정이다. 이러니 남의 특허를 고의로 침해하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난다. 미국 등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낮은 특허 출원 수수료, 특허청 심사관 부족 등으로 특허의 품질마저 떨어지고 있다. 한국의 ‘특허 무효화율’은 50%를 넘는다. 주요 국가 중 특허 무효화율이 가장 높다는 지적까지 받고 있다. ‘지식강국’을 입에 올리기 부끄러운 성적표다.
미국 일본은 물론이고 중국도 지재권 강국 전략을 실천에 옮기고 있다. 특히 중국의 ‘특허 굴기’가 무섭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국가지식재산위원회를 만들어 놓고도 특허 심사관 증원 문제 하나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특허침해에 관한 민사소송을 다루는 판사들의 전문성 확보와 변리사의 소송대리권 해결도 부지하세월이다. 글로벌 지재권 경쟁력에서 밀리면 정부가 말하는 혁신성장도 물 건너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