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과 시각] 美·中 무역갈등, 그 너머

입력 2018-12-23 17:46
"글로벌 생산메커니즘 변화 불가피
中, 독자 세력 구축해 美에 맞설 듯
韓은 냉철하고 균형잡힌 대응해야"

신민영 < LG경제연구원·경제연구부문장 >


이달 초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G20(주요 20개국) 회의에서 미국과 중국이 90일간의 추가 관세 유예를 합의한 바로 그날, 캐나다 밴쿠버에서는 멍완저우 화웨이 부회장(CFO)이 대(對)이란 경제제재법 위반 혐의로 체포됐다. 미·중 통상 갈등의 조기 해결이 어렵게 됐을 뿐 아니라, 이 사안이 애초부터 쉽게 해결될 성질이 아니었음을 말해주는 단면이다.

중국의 강제적 기술이전 요구나 지식재산권 침해, 비관세장벽 등을 멈추거나 없애고, 더 나아가 서비스와 농업 시장을 개방하라는 등 미국이 내건 유예의 조건들은 90일이라는 짧은 시한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과거 미·일 무역갈등과 비교해봐도 미·중 갈등은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임을 알 수 있다. 1980년대 반도체와 자동차를 중심으로 한 미·일 무역갈등은 1985년 9월의 플라자 합의와 ‘잃어버린 20년’으로 귀결됐다. 일본과 달리 향후 중국은 다른 행보를 보일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역내 군사강국 중국은 미국에 대한 상대적 경제규모에서 과거 일본의 두 배에 달하며 대미 협상력도 훨씬 높은 상태다.

미·중 무역갈등의 장기화가 불가피할 뿐 아니라 미국이 통상을 포함해 중국을 경제적으로 고립시키는 방향으로 전선을 확장하면서 글로벌 생산메커니즘에 변화가 초래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사태의 향배를 가늠하기 위해 관세 대상 품목과 세율, 가격 전가와 같은 촘촘한 계산을 넘어, 좀 더 장기적이고 다각적인 시야에서 미래를 바라보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현재 중국은 추격모델(fast follower)과 선도적 혁신모델(first mover)을 동시에 추구하면서 첨단기술 영역에서 빠르게 세를 확장하고 있다. 이에 대한 미국의 견제는 무역에서 발생하는 손익계산을 넘어 전에 없이 적극적이다. 국가안보를 이유로 상무부가 나서 중국 중싱통신(ZTE), 국유반도체기업 푸젠진화 등에 대한 자국의 부품장비 공급을 금지했다. 미국 제조업 쇠퇴의 상징인 러스트벨트의 여망을 등에 업고 대통령이 된 도널드 트럼프가 지금은 오히려 실리콘밸리로 대변되는 미래산업 보호에 한층 강경하고 날이 선 모습이다. 아울러 전 세계 무역흐름에서 중국을 배제시킬 기세다. 새로 출범한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에서 상대방 국가가 비(非)시장경제국과 자유무역협정을 하지 못하게 한 조항을 향후 일본이나 유럽연합(EU)을 상대로 한 자유무역협정에도 적용하려 하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이 확대될 경우 기존 세계 공급사슬의 차질과 비효율이 증폭되면서 기업들은 생산과 조달, 판매 등의 구도를 다시 짜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것이다. 선진 기업들의 직접투자로, 혹은 미국에서 이뤄진 혁신을 바탕으로 중국에서 생산된 제품이 전 세계에 뿌려진 지난 30여 년간의 세계 분업구조가 새로운 국면을 맞을 수 있다.

장기적으로 중국은 미국 등 선진국에 맞서는 독자 세력 구축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미국이 북중미와 유럽 등 선진국 중심의 블록을 형성하는 한편으로 중국이 동남아시아, 남미, 아프리카 등을 규합하며 이에 맞서는 구도다. 선진국 블록에서는 북중미의 분업구조와 유럽의 대미 무역 흑자 및 군사적 동맹이, 중국 주축의 블록에서는 중국 기업의 동남아 진출 등 일대일로(一帶一路) 구상과 브라질 등 원자재 생산국과의 긴밀한 교역관계가 핵심고리 역할을 할 것이다.

첨단기술 분야에서는 기술유출 문제나 표준을 둘러싼 경쟁까지 더해지면서, 이 같은 편가르기와 상호 배제의 움직임이 한층 첨예하게 전개될 전망이다. 한국은 미국과 군사외교적 동맹관계가 긴밀하지만, 중국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데다 기존의 분업관계도 존재한다. 향후 미국이 주도하는 첨단산업 분야에서 주도적 일원으로 활발하게 참여하면서도 중국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 시장도 쉽사리 놓칠 수 없다는 측면에서 냉철하면서도 균형 잡힌 대응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