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동의 데스크 시각] 카드 정책, 2012년 김석동이 옳았다

입력 2018-12-23 17:44
박준동 금융부장


[ 박준동 기자 ] 빈곤 문제 해법을 찾는 데 평생을 쏟아부은 영국 경제학자 앨프리드 마셜은 경제학자에겐 ‘뜨거운 가슴과 차가운 머리’가 필요하다고 했다. 많은 경제학 수업 첫 시간에 인용되는 문구다. 따뜻한 마음을 가지되 냉철한 판단력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는 경제학자보다는 경제정책 입안자에게 더 필요한 덕목이다. 경제학자가 이를 잊었을 때는 잘못된 논문 하나 쓰면 그만일 수 있다. 하지만 경제정책 설계자가 이를 놓치면 예상치 못한 부작용으로 수많은 사람이 고통받을 수 있다.

여당과 정부가 지난달 마련해 내년부터 시행하는 ‘카드 수수료 개편 방안’을 보면 가슴은 뜨거울지 몰라도 머리는 차갑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번 개편 방안의 골자는 카드사가 연간 8000억원가량의 수수료를 덜 받고 마케팅을 축소해 수입 감소분을 보전하라는 것이다.

수수료 인하로 잃는 것 많아

자영업자 등 카드 가맹점은 환영하고 있지만 카드업계는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수입이 감소하니 어쩔 수 없이 인력을 줄여야 하는 상황이다. 한국경제신문 취재에 따르면 카드사 직원, 카드 모집인, 결제를 대행하는 밴(VAN)사 직원 등 전체 카드업계 종사자 5만여 명 가운데 20%인 1만여 명이 실직을 걱정하고 있다. 물론 무이자할부 등 소비자 혜택도 사라지거나 줄어든다.

이 같은 부작용이 발생하는 것은 당정이 스스로 내세운 두 가지 원칙을 판단하는 데 있어 ‘차가운 머리’가 작동하지 않아서다. 먼저 수익자 부담의 원칙. 카드를 많이 써서 이익을 보는 쪽은 카드사와 소비자라는 게 당정의 판단이다. 물론 카드사와 소비자가 이익을 본다. 하지만 카드 이용이 늘어 소비가 증가해서 얻는 수익은 가맹점도 본다. 더군다나 정부는 세금 징수를 대폭 늘리는 수익을 얻었다. 이들 수익자는 이번 대책에서 아무 부담도 지지 않는 것으로 정해졌다.

다음은 역진성 해소의 원칙. 당정은 대형 가맹점이 일반 가맹점보다 수수료를 더 적게 내는 것을 문제라고 봤다. 하지만 남대문시장에선 옷을 열 벌 사면 한 벌 사는 사람에 비해 깎아 주는 게 당연하다. 카드에서도 거래금액이 커서 건당 비용이 줄어들면 수수료를 적게 내는 게 합당하다. 이것이 역진이라고 하면 어불성설이다. 역진성 해소는 소득 재분배를 위해 소득이 많은 사람에게 세금을 더 걷는 것을 가리키는 재정학 용어다. 정부 영역에서 쓰는 말이지, 민간 가격을 놓고 쓰는 말이 아니다.

"정부가 값 정하면 갈등 유발"

지금 카드 수수료 문제의 근원은 2012년 여신전문금융업법이 고쳐지면서 정부가 카드 수수료율을 정하도록 한 데 있다. 당시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그해 2월2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해 이렇게 말했다. “정부가 직접 가격(카드 수수료율)을 정하고 금융회사들이 강제로 준수해야 한다면 시장원리를 훼손한다. 심지어 영업 자유의 원칙을 규율하고 있는 헌법과도 맞지 않는다. 정부가 어떤 형태로든 가격을 정하면 사회적 갈등을 유발할 수밖에 없다.”

김 전 위원장은 정치권에서 개정안을 통과시키려 하자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명박 전 대통령은 그해 3월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고 국무회의에서 의결했다.

‘차가운 머리’로 자영업자 문제를 다시 생각해 보자. ‘프랜차이즈의 대부’로 불리는 백종원 씨가 지난 10월 국회에서 한 말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자영업자가 어려운 이유는 인구당 매장 수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외식업을 너무 쉽게 할 수 있는 상황이 문제다.”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