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편소설 '안락' 낸 은모든 작가
[ 은정진 기자 ] “곧 다가올 미래라고 생각했어요. 생명이라는 게 축복이면서도 형벌이라잖아요. 모두 자기 생명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갔으면 하는 염원이 강했습니다.”
최근 신간 《안락》(아르테)을 내놓은 소설가 은모든(사진)이 23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안락》은 10년 뒤인 2028년을 배경으로 ‘안락사’로 알려진 자발적인 수명계획을 진행하려는 88세 할머니와 그 결정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엄마를 딸 지혜 시선에서 애틋하게 풀어낸 이야기다.
은 작가는 소설 속 10년 뒤를 안락사 법안이 통과된 즈음으로 설정했다. 그는 “2017년 통과된 약칭 ‘연명의료결정법(웰다잉법)’이 인간적 존엄을 지키며 죽음을 맞이하는 최소한의 법적장치라고 들었다”며 “이 중 ‘최소한의’라는 말에 꽂혔고 10년 후쯤이면 보다 적극적으로 논의가 이뤄질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안락사 법안이 통과된 즈음 할머니는 가족들 반대에도 스스로 임종 날짜를 잡고 신변 정리를 시작한다. 평생 씩씩했던 할머니는 “다들 애 많이 썼다. 고맙다”는 말을 남긴 채 편안히 눈을 감는다. 소설은 특별한 갈등구조를 담진 않았지만 단숨에 읽어내려가게 만든다. 시종일관 담담한 어투로 ‘죽음은 두려운 게 아니라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는 것’이란 메시지를 던진다. 은 작가는 “사건이 박력있게 일어나진 않지만 마지막 단락을 읽은 이들에게 이런 선택을 한 인간에 대한 ‘여운’과 ‘울림’을 전해주고 싶었다”고 했다.
전작 소설들처럼 《안락》에도 ‘술’이 중요 소재로 등장한다. 손녀 지혜와 할머니를 강하게 묶어주는 끈으로 ‘자두주’가 나온다. 저자는 “두 사람이 주기적으로 시간을 보낼 방법을 많이 고민했다”며 “술이 내 삶에 걸쳐 있어 의도하진 않았지만 쓰고 보니 ‘또 술이 등장했구나’ 싶었다”며 웃었다.
최근 오디오북 인기에 힘입어 《안락》 역시 오디오북을 제작했다. 배우 한예리 씨가 녹음했다. 저자는 “마지막 단락이 제일 중요한 부분인데 한씨 목소리 톤이 소설 속 지혜처럼 침착하고 강단 있게 들려 매우 잘 어울렸다”고 했다.
장편소설 《애주가의 결심》(은행나무)으로 올해 한경 신춘문예 장편소설부문에 당선된 은 작가는 단편소설 《꿈은, 미니멀리즘》(미메시스)에 이어 이번 중편소설까지 등단 1년 만에 총 세 권을 쏟아냈다. 그는 “남들보다 등단이 늦어 일명 ‘재고 작가’라고 불렸기에 그동안 썼던 소설들을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내놓으려 애썼다”고 말했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