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건 조직 이익…어설픈 합의보다 결렬이 낫다

입력 2018-12-20 14:34
수정 2018-12-20 17:27
경영학 카페

시간에 쫓겨 협상하다 보면 상대방의 요구를 수용하게 돼
시간이 없다고 생각되면 타임설정을 다시 하고 협상을
꼭 타결하겠다는 강박관념이 감당키 어려운 손해 끼칠 수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최근 “북한과의 협상, 서두를 것 없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많은 사람이 북한과의 협상이 어떻게 돼 가고 있느냐고 물어보고 있다. 나는 항상 우리는 서두를 것이 없다고 답한다”고 했다.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이 더 이상 진전되지 못하고 교착 상태에 빠져 있는 상황에서 자신은 서두르지 않겠다는 언급을 한 것이다.

협상이란 서두르는 당사자에게 불리하게 전개된다. 데드라인에 쫓겨 허둥지둥하는 협상이 성공적으로 끝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초읽기에 몰린 바둑 기사가 무리수를 두거나 자충수를 두는 것을 보면 금방 이해가 갈 것이다. 노련한 협상가는 시간을 낭비하지도 않지만 끌려다니지도 않는다. 언제나 느긋한 태도를 견지하면서 상대를 깊이 관찰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트위터에서 한발 더 나아가 북한을 다음과 같이 압박하고 있다. “그 나라(북한)는 매우 큰 경제적 성공을 할 멋진 잠재력이 있다. 김정은은 누구보다도 이를 알고 그의 주민을 위해 전적으로 기회를 활용할 것”이라고 했다. 부드럽지만 강한 압박이다. 상대를 인정해주고 띄워주면서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하는 발언이다. 오랫동안 월가에서 비즈니스 협상을 하면서 익힌 노련함이 묻어 있다. 상대의 속사정을 간파하고 어떤 카드가 나올지 예측한다면 굳이 서두를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마치 포커게임에서 상대의 수를 읽고 나면 느긋해지는 것과 같다. 미국의 경제제재 해제를 목마르게 기다리고 있는 김정은의 속마음을 간파한 것이다.

협상학에는 “마지막 10%의 시간에 양보의 90%가 이뤄진다”는 말이 있다. 협상 초기에는 양측이 양보하지 않고 팽팽히 맞선다. 협상이 진행되면서 마감 시한이 임박하면 결렬에 대한 압박감이 작동하게 되고 마침내 양보를 시작한다. 이때 시간이 많은 측과 그렇지 못한 측이 있을 수 있다. 마감 시간에 몰린 측은 대체로 상대 요구를 수용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당신이 대량 판매를 상담하기 위해 일본 출장을 갔다. 고객과 만나기로 한 이튿날 아침 어떻게 해서든 영업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결심이 섰을 것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일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점심시간이 지났지만 몇 가지 사소한 점에서만 합의했을 뿐 진전이 없다. 당신은 항공사에 전화를 걸어 출발 시간을 다음날 오전으로 연기한다. 저녁을 먹고 나서 당신은 무언가 돌파구를 찾아야겠다고 결심한다. 바로 이때가 위험하다. 밤늦게까지 상대와 협상하는 당신은 오전까지 생각지도 않았던 양보를 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것은 당신의 잠재의식에 변화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들인 시간과 노력이 아까워서라도 빈손으로 돌아갈 순 없어. 뭔가 합의를 해야 해”라는 압박감이 든다. 협상 결렬 뒤에 따라올 결과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이런 점을 아는 노련한 협상가는 시간에 얽매이지 않는다. 시간이란 것은 협상이 타결되든 결렬되든 상관없이 사라진다. 최선을 다해 협상하지만 ‘이건 아니잖아’라는 판단이 서면 주저하지 않고 거래를 중단한다. 다음에 다시 하면 되기 때문이다.

당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매달리다 보면 결국 상대의 요구를 수용하게 된다. 시간적 여유가 있어야 좋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정 시간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타임 설정을 다시 하는 것이 좋다. 협상 테이블에서 한발 물러나 숲을 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합의안을 수용하는 것이 조직의 이익에 부합하는지를 다시 한번 검토해야 한다. 주어진 시간 내에 반드시 타결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어설픈 합의보다 결렬이 낫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타결이 아니라 조직의 이익이다. 협상에 들인 시간과 노력이 아까워서 합의한다면 이후 감당하기 힘든 손해가 발생할 수도 있다.

이태석 < IGM 세계경영연구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