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노위, 행정지도 결정했는데 2002년 이후 첫 불법파업
"노조, 세력 약화될까 우려…R&D법인 분리에 강력 반대"
[ 도병욱/강경민 기자 ] 한국GM 노동조합이 19일 불법파업을 강행했다. 연구개발(R&D)법인 분리를 막기 위해서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한국GM 노조가 파업권을 확보하지 않고 불법파업을 한 건 2002년 창사 이후 처음이다. 회사 안팎에서는 “노조의 불법파업은 미국 제너럴모터스(GM) 본사가 한국에서 철수할 빌미를 주는 최악의 수”라는 지적이 나왔다.
한국GM 노조는 이날 전반조(오전 11시40분~오후 3시40분)와 후반조(오후 8시20분~20일 0시20분)로 나눠 4시간씩, 총 8시간 파업을 했다. 노조 간부 140여 명은 오전 출근길에 선전전도 벌였다. 노조는 지난 10월부터 두 차례 중앙노동위원회에 쟁의조정을 신청했지만, 중노위는 모두 행정지도 결정을 내렸다. 노조에 파업권을 주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한국GM 노조는 파업을 강행했다. 이날 파업에는 조합원 전원(약 1만 명)이 동참했다. 노조는 “총파업도 불사하겠다”고 밝혔다.
노조는 “R&D법인 분리는 한국 생산공장을 폐쇄하기 위한 절차인 만큼 이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GM은 디자인부문과 R&D부문 인력 3000명을 떼어내 ‘GM 테크니컬센터 코리아’라는 이름의 신설법인을 설립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GM의 2대 주주인 산업은행은 한동안 이를 반대했지만, 지난 18일 찬성으로 돌아섰다. GM 본사가 제3국에 배정된 R&D 물량 일부를 신설법인에 배정하겠다고 하는 등 설득에 나선 결과다.
한국GM은 18일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열고 법인 분리 안건을 통과시켰다. 연내 분할 절차를 마치겠다는 게 한국GM의 목표다. 이미 신설법인 대표이사와 이사진 선임 절차를 마쳤다.
자동차업계는 한국GM 노조가 자신들의 세력이 약화될 것을 우려해 법인 분리에 반대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법인이 쪼개지면 자연스럽게 조합원 수가 줄어들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해 강경 투쟁을 한다는 의미다. R&D법인이 분리되면 한국GM 노조원은 1만여 명에서 7000여 명으로 줄어든다. 한국GM 노조가 파업하더라도 R&D법인 노조가 동참하지 않으면 회사 측 부담은 줄어든다.
무급휴직자 생계유지비 지원 문제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한국GM 노사는 지난 4월 무급휴직자 400여 명에게 생계유지비를 월 250만원씩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지난달까지는 정부가 고용유지지원금 형식으로 이를 지원했지만, 이달부터는 노사가 1인당 125만원씩 지급해야 한다. 노조가 월 4억원 이상을 부담해야 하는 상황인데, 조합원 수가 줄면 1인당 부담비용이 더 늘어난다. 노조는 사측 부담 비율을 더 높이라고 압박하고 있지만, 회사는 이를 거부하고 있다.
문제는 한국GM 노조가 불법파업을 강행하면서 한국GM을 보는 GM 본사의 시선이 더욱 싸늘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GM 본사가 한국에서 철수할 빌미를 줄 수 있다는 의미다. 가뜩이나 GM은 미국 내 공장 5곳과 해외 공장 2곳을 폐쇄하겠다고 발표할 정도로 선제적 구조조정에 힘을 쏟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4월 노조가 카허 카젬 사장 집무실을 점거했을 때 본사 일각에서는 ‘이런 환경에서 사업을 계속해야 하나 고민스럽다’는 반응이 나왔다”며 “노조의 강경 투쟁이 오히려 악수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도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노조가 반대 입장을 고집해 생산효율이 감소하고, GM이 조기 철수할 빌미를 제공한다면 도대체 누구의 이해관계를 위한 것인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도병욱/강경민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