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등의 반란] '폐업 위기' 휠라는 어떻게 1분에 1켤레씩 파는 브랜드가 됐나

입력 2018-12-19 07:47
수정 2018-12-19 15:47
<한경닷컴>은 앞으로 '2등의 반란' 기획을 통해 흥미진진한 역전 성공스토리를 세상에 알릴 예정이다. 국내외 유명 브랜드뿐만 아니라 히트 상품, 스타 기업, 잭팟을 터뜨린 비즈니스 모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낭중지추(囊中之錐)만 골라내 집중 조명한다. 역전 스토리를 써낸 주인공들의 이야기 속에서 혜안을 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편집자주]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휠라는 패션 감각이 부족한 '아재(아저씨의 줄임말)'들이 입는 브랜드로 취급됐다. 100년이 넘는 유산이자 휠라의 문양인 'F'자 로고가 크게 박힌 특유의 스타일, 붉은 색과 짙은 푸른 색(휠라의 대표 색상)을 바탕으로 하는 옷과 신발들은 1990년 이후 태어난 세대들에겐 '촌스러움'의 상징으로 인식됐다. 그렇게 휠라는 시들어갔고 2000년 초 휠라는 파산 직전까지 내몰렸다.

그렇게 잠잠했던 휠라가 부활했다. 1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휠라코리아의 패션 브랜드 '휠라'는 올해 약 1조1000억원의 매출을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 휠라의 매출 1조원은 국내 패션 브랜드로는 유일하다. 국내 패션 시장에서 매출액 '1조 클럽'에 가입한 브랜드는 일본 제조·직매형(SPA) 패션브랜드인 유니클로 밖에 없다.

휠라의 '반전 스토리'를 만든 건 운동화다. 올해 말까지 휠라의 운동화 예상 생산량인 4000만족은 글로벌 스포츠 용품 업체인 나이키와 아디다스의 약 10% 수준이며, 운동화 부문에서 전 세계 두 번째 그룹을 형성하고 있는 푸마, 아식스의 절반에 해당하는 규모다. 불과 몇 년 만에 글로벌 브랜드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준으로 올라선 셈이다.

시작은 2016년이다. 2014년부터 줄곧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자 "이대로는 안 된다"는 내부 분위기가 팽배했다. 2003년 휠라 한국법인이 파산 직전까지 내몰린 휠라 본사(이탈리아)를 거꾸로 인수한 이후에도 특별한 반등의 계기를 마련하지 못하던 휠라코리아는 기존의 것을 완전히 버려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결단을 내렸다.

휠라는 그동안 테니스, 골프와 같은 고연령층 스포츠에서 두각을 나타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30대 이상에서 소비 타깃층이 형성됐다. 이 때문에 '중장년층이 입는 브랜드'로 인식됐고 휠라를 구매하는 소비층은 제한됐다. 이를 10~20대들이 입는 브랜드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 2016년 휠라의 결론이었다.

1991년 휠라코리아 창립 이후 25년 만에 처음으로 브랜드 정체성을 완전히 바꾸는 작업이 시작됐다. 첫 번째 프로젝트는 운동화였다. "10~20대 들이 집어 드는 운동화를 만들자"는 것이 전략실의 목표였다. 때마침 전 세계적으로 10대들 사이에선 코트화(테니스화 콘셉트의 신발)가 유행이었고 이 분야에선 아디다스가 '슈퍼스타'와 '스탠스미스'라는 글로벌 메가히트 제품을 보유하고 있었다.

휠라는 100년이 넘는 브랜드 역사 중 테니스가 가장 대표 종목이었다. 코트화는 자신 있었다. 신발 형태를 잡는 데에만 서른 개의 각각 다른 샘플을 찍어냈다. 아주 사소한 디자인과 문양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10대들의 눈에 들기 위해선 너무 튀거나 부족한 부분이 없어야 했다.

휠라 역사상 가장 오랜 개발 기간(6개월) 끝에 2016년 9월 '코트디럭스'가 나왔다. 반응은 바로 왔다. 젊은 층 사이에서 휠라의 코트화가 경쟁사에 비해 착화감이 뛰어난 반면 가격은 훨씬 싸다는 입소문을 타는데 성공했다. 경쟁사 코트화는 가격이 10만~11만원대였지만, 휠라의 코트디럭스는 6만원대였다.

코트디럭스는 출시된 이후 약 15개월 만에 100만족 이상을 팔았다. 1분에 1.5켤레씩 팔린 셈이다. 현재까지 국내에서만 140만족이 판매됐다. 글로벌 브랜드 아디다스의 코트화 '스탠스미스'가 연간 800만족을 생산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코트디럭스 역시 '초대박'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휠라는 코트디럭스의 성공에 취하기 전 바로 차기작 개발에 돌입했다. 지난해 미국 뉴욕과 유럽 등의 패션쇼에서 1960~1970년대에 유행했던 '복고풍(레트로)' 스타일의 옷과 신발들이 선보인 뒤 '투박하고 못생긴' 이른바 '어글리 슈즈'가 젊은 세대 사이에서 인기를 끌 조짐을 나타냈다.

그러나 성공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당시 10대들에게는 밑창이 얇고 심플한 디자인을 갖고 있는 코트화가 유행이었기 때문이다. 밑창이 코트화에 비해 두 배 이상 두툼하고 투박한 디자인이 특징인 어글리 슈즈를 젊은 층이 집어들 것이라는 의견을 두고 내부에선 찬반이 갈렸다. 국내에선 아예 어글리 슈즈라는 카테고리도 존재하지 않던 때였다.

휠라는 객관적인 평가를 시험하기 위해 테스트를 진행해 보기로 했다. 휠라는 이미 20년 전 '디스럽터'라는 스트리트 슈즈 콘셉트의 신발을 내놓은 바 있다. 거칠고 투박했던 이 신발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2017년 5월 '디스럽터2'를 1000족 한정으로 온라인 쇼핑몰에 내놨다. 마땅한 광고를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1000족의 신발은 단 하루 만에 동이 났다.

10~20대들은 휠라의 어글리 슈즈를 사기 위해 온라인몰과 신발 편집숍으로 몰려들었다. 확신을 얻은 휠라는 지난해 7월 디스럽터2를 공식 출시했다. 디스럽터2는 코트디럭스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판매됐다. 출시 1년 만에 국내에서만 100만족이 팔렸다. 지난달까지 국내에서만 170만족이 판매된 디스럽터2는 올 연말 전 세계적으로 1000만족 판매를 눈앞에 두고 있다.

디스럽터2는 최근 미국 슈즈 전문 미디어인 '풋웨어뉴스'가 발표한 '2018 올해의 신발'에 선정됐다. 선정 기준은 ▲트렌드를 대표할 수 있는지 ▲셀러브러티(유명 인사)나 인플루언서(대중에게 영향력 있는 인물)들에게 주목을 받았는지 ▲대중성을 갖추고 있는지 ▲오리지널 이외에 다양한 버전이 출시됐는지 등이다. 이 모든 요건을 디스럽터2가 갖췄다는 평가를 받은 셈이다.

휠라코리아 관계자는 "새로운 고객층인 10~20대 소비자들의 마음을 잡기 위해 2016년 브랜드 리뉴얼을 진행한 것이 발판이 됐다"며 "앞으로도 높은 품질의 제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선보일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