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 상대 신원 따지지 않고
거래 이뤄지면 취소도 불가능
A씨는 약 200만원이 결제된 스마트폰 요금 고지서를 받고선 깜짝 놀랐다. 5살 자녀가 스마트폰 게임을 하면서 유료 아이템을 계속 결제한 결과였다. 게임 소액결제를 했던 게 화근이 됐다. 신용카드 정보가 저장돼 결제가 반복적으로 이뤄졌다. A씨는 게임회사에 연락해 절차를 거친 뒤에야 결제 내역을 취소할 수 있었다.
만약 블록체인 기반 게임에서 스마트계약을 이용해 가상화폐(암호화폐)로 결제한 경우라면 어떨까? 과학기술정통부 블록체인 규제개선 연구반에 참여하고 있는 정진명 단국대 법학과 교수는 17일 서울 역삼동 포스코P&S에서 열린 '테크비즈 컨퍼런스'에서 “미성년자나 금치산자 등은 거래능력을 법률로 제한해 보호하고 있지만 스마트계약에선 보호받지 못한다”고 짚었다.
정 교수는 “전통적인 계약은 대면해 서로 신원을 확인한 뒤 청약과 승낙이 이뤄지지만, 스마트계약은 비대면을 전제로 한 프로그램에 의한 일방적 계약”이라며 “하드포크(체인분리)를 하지 않는 이상 한 번 이뤄진 계약을 되돌리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상대방의 법적 지위를 확인하지 않으며 상대를 특정하지 않은 채로 거래가 이뤄져 취소가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그는 “스마트계약은 거래시 A가 조건을 걸어두면 B가 돈을 냈을 때 A가 관여하지 않아도 대가가 제공돼 거래가 성립하는 구조”라며 “1994년 닉 자보가 제안했지만 기반기술이 없었기에 비탈릭 부테린의 이더리움에서 비로소 구현됐다”고 설명했다.
스마트계약은 대금을 먼저 받으므로 계약 불이행이 발생하지 않는다. 계약이 불리할 경우 파기하는 기회주의적 계약위반도 불가능하게 만든다. 가령 부동산 거래의 경우 계약을 체결한 후 시세가 급등락할 경우 손해배상을 감수하고 계약을 파기하는 경우도 있다. 정 교수는 “전통적 계약은 체결 후 일방이 이를 불리하다고 판단할 경우 파기하고 손해배상을 하면 되지만 블록체인에서는 이러한 방식이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앞으로 상품 주문이 가능한 인공지능(AI) 가전제품, 스마트 스피커 등과 결합될 경우 중요 쟁점으로 부각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아직은 스마트계약이 어떤 형태로 발전할지 알기 어렵다”면서도 “AI나 사물인터넷(IoT)과 연결되면 계약의 형태를 크게 바꿀 것이다. 대응책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o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