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복지 폭주'
중앙정부 복지확대 등에 업고 올해 1000건 넘어
연금·수당·배당·장려금…이름 살짝 바꿔 '베끼기'
경기도 청년연금 등 174건…전남·전북 110건 넘어
복지부서 '제동'은 2015년 47→작년 24→올해 0건
[ 김일규 기자 ] 이재명 경기지사는 성남시장 시절인 2015년 ‘청년배당’사업을 처음으로 들고나왔다. 성남지역 24세 청년에게 분기마다 25만원씩 지급하는 사업이다. 성남시의 사업 협의 요청에 보건복지부는 “사업 취지가 불분명하다”며 ‘불수용’ 통보를 했다. 성남시는 그러나 2016년부터 사업을 강행했다.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은 올해 6월 경기지사에 당선되면서 ‘청년배당’사업을 그대로 경기도에 심었다. 지난 10월 복지부에 사업 협의를 요청한 뒤 일단 내년 예산(1227억원)부터 편성했다. 아직 협의 중이지만 청년배당 예산은 지난 14일 경기도의회를 그대로 통과했다. 성남시 때처럼 강행하면 된다는 생각에서다. 그 사이 청년배당사업은 전국 지방자치단체로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청년수당’(서울시), ‘청년구직활동수당’(경상남도), ‘청년구직지원수당’(전라남도) 등 이름만 조금씩 달리했다.
중·고교생 무상교복, 초·중등생 수학여행비 지원 등도 올 하반기 이후 지자체가 앞다퉈 도입하고 있다. 그때마다 ‘광역 단체 중 최초’ ‘조례안 압도적 지지로 통과’ 등의 문구를 내걸며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지자체 간 현금살포식 ‘복지폭주’ 경쟁 결과다.
현금살포식 사업, 1000건 넘어
복지부가 김세연 자유한국당 의원에게 제출한 ‘신설·변경 사회보장제도 협의·조정 실적’ 자료를 16일 한국경제신문이 입수·분석한 결과 전국 지자체가 올 들어 11월까지 복지부에 협의한 복지 확대 사업은 모두 1022건에 달했다. 경기도가 174건으로, 가장 많은 복지사업을 내놨다. 청년배당에 더해 산후조리비 지원(내년 예산 473억원), 무상교복 지원(26억원) 등이 대표적이다. 이른바 경기도 ‘3대 무상복지’다. ‘생애 최초 청년국민연금’(147억원)도 있다. 경기지역 18세 청년 약 16만 명의 국민연금 첫 달치 보험료(1인당 9만원)를 대신 내주는 사업이다. 국민연금 기금 고갈을 앞당길 가능성이 크지만 도의회는 14일 이 예산안을 그대로 통과시켰다.
강원도(81건)의 경우 ‘육아기본수당’이 대표적이다. 내년부터 강원지역 모든 출생아에게 매월 70만원씩 지급하는 사업이다. 내년 예산만 243억원이 든다. 복지부가 12일 강원도에 ‘재협의’를 통보함에 따라 도의회는 14일 관련 예산을 내부유보금으로 일단 조정했다. 강원도는 복지부와 재협의가 완료되면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겠다는 방침이다.
전라남도(116건)와 전라북도(113건)가 내놓은 복지사업도 각각 100건이 넘는다. 전라남도는 신혼부부 건강검진, 대학생 월세 지원, 청년취업자 주거 지원 등을 내놨다. 전라북도는 부모 부담 보육료 지원, 교복 구입비 지원 등을 선보였다.
기초지자체(시·군·구)가 복지부에 협의 요청한 사업도 대동소이하다. 대부분 소속 광역지자체 및 인근 기초지자체 복지사업을 베끼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는 “이름은 조금씩 다르지만 현금을 더 쥐여주는 식의 사업이 대다수”라고 말했다.
복지부 견제력은 점점 떨어져
지자체 복지사업 중 상당수는 이미 정부가 시행 중인 사업과 겹친다. 지원 대상 또는 금액을 늘린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광역지자체와 기초지자체 간 사업이 중복되는 사례도 많다. 예를 들어 정부도 주고, 경기도도 주고, 성남시도 주는 식이다. 재정이 낭비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이를 걸러내야 할 복지정책 컨트롤타워인 복지부의 견제력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복지부의 지자체 사업에 대한 ‘부동의’ 건수는 2015년 47건에서 2016년 37건으로 감소한 데 이어 지난해엔 24건으로 줄었다. 올해 협의 사업 1022건 중 651건은 거의 그대로 통과됐고, 282건은 협의 중이다. 나머지 89건은 지자체 스스로 철회했다.
올해는 복지부가 부동의한 지자체 사업이 한 건도 없다. 복지부가 지자체 복지사업의 자율을 늘리겠다며 올해 협의 지침에서 부동의할 권한을 스스로 없앴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는 “지자체가 자체 재정으로 복지사업을 늘리겠다는 것을 막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며 “일부 지자체에 의해 복지 체계 전반이 흔들릴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