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경찰은 자전거 단속원?…구청 공문에 뿔난 경찰

입력 2018-12-16 17:57
수정 2018-12-21 09:58
제도 시행 앞두고 공문 배포
성폭력 등 민생 치안과 '괴리'

경찰 "단속 공무원 편하려고 힘들고 위험한 일 떠넘기냐"


[ 이수빈 기자 ] 서울시가 2019년 자치경찰제가 시행되면 경찰관을 한강 주변 등에 배치해 자전거 단속을 시키겠다는 취지의 공문을 작성해 논란이 일고 있다.

16일 서울시는 최근 자치경찰제 시행과 관련해 협조할 업무를 검토해달라는 공문을 각 구의회 사무국 등에 배포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문에는 개선 예상 분야 사례가 담겨 있는데 교통질서 유지, 택시 승차거부 단속 등 현재 구청이 책임지는 업무가 대거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A구는 한강이나 정릉천 등 하천 주변에 자치경찰을 배치해 자전거도로 내 사고를 예방하고 여름철 집중호우 또는 태풍 예보 등으로 출입 통제가 필요할 때도 자치경찰과 협업하겠다고 밝혔다. B구는 또 “주정차 금지구역에서 피단속인과 물리적 충돌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며 “자치경찰과 합동 단속을 해 담당 공무원의 안전을 확보하겠다”고 덧붙였다. 택시 승차거부, 체납차량 번호판 영치 등도 자치경찰과 협업할 주요 업무로 제시했다. 택시기사와 체납자의 강력한 저항으로 단속 공무원의 신변이 위험하단 이유에서다.

일선 경찰관은 이를 두고 “어이없다”는 반응이다. 한 지구대 소속 경찰관은 “지역자치단체에서 자치경찰을 심부름꾼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경찰관은 “지금도 오후 6시만 지나면 주정차위반 민원 업무를 경찰에 떠넘기는데 자치경찰제가 시행되면 아예 대놓고 힘들고 귀찮은 일은 죄다 경찰에 미루겠단 얘기 아니냐”고 꼬집었다. 논란이 확산되자 서울시 관계자는 “해당 공문은 예시일 뿐 시행하겠다는 의미는 아니다”고 해명했다.

대통령 소속 자치분권위원회는 2019년 말 자치경찰제를 서울 제주 세종 등 5개 지역에서 시범 운영한 뒤 2021년부터 전국으로 확대한다고 발표했다. 국가경찰의 36%가량인 4만3000명이 자치경찰로 전환될 예정이다.

이수빈 기자 ls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