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진우의 부루마블] 게임업계 '자율규제' 헛바퀴…"땜질식 처방만"

입력 2018-12-14 09:33
수정 2018-12-14 09:38
게임정책자율기구 '확률형 아이템' 확률 공개
업계 자정 노력에 신뢰 회복 기대
확률 공개 중요치 않다 목소리도
"규제 잘 지키는 3N은 왜 비판 받는가"



"게임업계가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의 정확한 이유를 모르는 것 같다."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GSOK) 출범에 대한 직장인 김평섭(34) 씨의 반응이다.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는 건강한 게임 생태계 조성을 목적으로 지난달 16일 출범한 민간자율조직이다. 게임업계 주요 관계자와 외부 전문가가 참여했다. 인터넷 게시물의 자유와 책임 문제를 다루는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와 비슷하다.

자율기구가 지난 12일 첫 번째 결과물인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 강령 준수율'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는 게임업계의 대표 자율규제다. 구체적인 내용으로는 ▲확률형 아이템 결과물에 대해 개별 확률 공개 ▲확률정보 표시 위치를 이용자의 식별이 용이한 화면에 안내하도록 한 강령 등이 있다.

자율기구는 한 달간의 조사를 통해 국내 게임사의 13.9%, 해외 게임사의 54.3%(11월 기준)가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를 지키지 않았다고 밝혔다. 반면 한국게임산업협회에 소속된 회원사의 자율규제 이행률은 98.1%로 4개월 만에 20% 이상 개선됐다고 강조했다. 업계의 자율규제 정착 노력이 결실을 맺고 있다는 해석이 따라붙었다.

규제 미준수 게임 18종도 공개했는데 11종(60%)이 해외 게임이었다. 확률형 아이템 문제가 해외 게임 때문이란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해외 게임의 준수율이 낮은 이유에 대해 자율기구는 "해외 업체의 참여가 낮기 때문"이라 설명했다. 다만 해외게임사의 반발을 의식한 듯 "국내 게임 시장에서 국내 게임업체와 해외 게임업체 간 역차별이 발생하지 않도록 기구와 평가위원회는 해외 게임업체의 자율규제 참여 확대 방안을 지속적으로 모색하고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게임업계의 자율규제는 끊임없이 고도화되고 있다. 업체들의 노력과 협회·학회·정부의 적극적인 참여로 산업 진흥과 건전한 게임문화 확산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중견 게임사 간부는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며 "업계의 자정노력이 이어지면서 국산 게임에 대한 신뢰가 회복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반 유저와 해외 게임사의 생각은 달라 보인다. 확률형 아이템과 양산형 게임(과도한 결제만 유도하는)이 사라지지 않는 한 게임에 대한 비난여론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통신사에서 근무하는 조지훈 씨(28)는 "게임업계가 근본적인 원인을 외면하고 땜질식 처방만 내놓고 있다"며 "핵심은 확률형 아이템에 의존하는 양산형 게임에 대한 불만이다. 정확한 확률이 공개된다고 달라질 건 없다"고 말했다.

해외 게임사들의 생각도 비슷하다. 확률형 아이템이 아닌 다른 비즈니스 모델을 찾아야지, 확률만 공개한다고 달라질 건 없다는 입장이다. 해외 게임사 관계자는 "규제를 잘 지키고 부사장들이 (자율기구) 이사로 활동하고 있는 넥슨, 넷마블, 엔씨소프트은 그럼 왜 욕을 먹느냐"며 "모든 책임을 자율규제를 지키지 않은 해외 게임사들 탓으로 돌려선 안 된다. 근본적인 원인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 강조했다.

윤진우 한경닷컴 기자 jiinw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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